'수소탄' 발언서 4차 핵실험까지…북한 권부에 무슨일 있었나

김정은 '수소탄 폭음' 첫 발언 공개 5일 뒤 핵실험 진행 명령
비슷한 시기 핵담당 파워엘리트 교체…긴박했던 정황 속속 확인
북한이 지난 6일 기습적인 제4차 핵실험에 앞서 핵개발 담당 파워엘리트들도 교체하는 등 핵실험 결행을 위해 긴박하게 움직였던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수소폭탄 실험을 처음 암시한 것은 약 한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달 10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를 보면 그는 평양 평천혁명사적지를 시찰한 자리에서 "수소탄(수소폭탄)의 거대한 폭음을 울릴 수 있는 강대한 핵보유국으로 될 수 있었다"며 수소폭탄에 대해 처음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당시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김 제1위원장의 발언이 사실이 아니라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허풍'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김 제1위원장의 당시 발언은 핵실험 관련 제반 여건을 완비했음을 시사한 것으로 대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로부터 이틀 뒤인 지난달 12일 모란봉악단의 베이징(北京) 공연이 공연 시작 약 3시간을 앞두고 갑자기 취소됐다. 같은 날 남북간 당국회담도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결렬됐다.

표면적으로는 북한의 핵실험과 모란봉악단의 공연 취소는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여기서 북한이 새해 벽두 국제사회의 예상을 깨고 핵실험을 감행한 배경의 단서를 찾는 전문가들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12일 "북한이 그간 핵실험을 치밀하게 준비해오긴 했지만 모란봉악단 공연 취소 사태를 통해 북중관계의 악화를 재확인한 김정은이 즉흥적으로 실험 강행을 지시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김 제1위원장은 공연 취소 사흘 뒤인 지난달 15일 수소폭탄 실험 진행을 명령한 사실이 조선중앙TV를 통해 밝혀졌다. 이후 북한 당국은 핵실험 실행을 위해 속도를 냈을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인 핵실험 준비를 전후해 북한은 노동당 군수공업부장(장관급)을 김춘섭에서 리만건으로 바꾸는 등 핵무기 개발을 담당하는 군수공업부 책임자들을 전격적으로 교체한 것으로 분석된다.

군수공업부장이 교체됐다면 그 시점은 리만건이 마지막으로 평안북도 당 위원회 책임비서 직함을 달고 행사에 참석했던 지난해 11월 27일 이후로 볼 수 있다.

또한 지난달 25일 평북 당 책임비서가 리만건에서 김능오로 바뀐 사실이 북한 중앙방송을 통해 확인되는 점을 놓고 볼 때 지난달 중 교체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와 함께 리병철이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에 임명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으며, 지난해 당 군수 담당 비서에서 물러난 박도춘은 현재도 군수공업 분야에서 일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직급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실무 차원에서 핵실험을 주도한 인물로는 군수공업부의 '젊은 피'로 통하는 홍영칠·홍승무 부부장(차관급) 등이 거론된다.

지난 2014년 미국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인 38노스는 김정은 시대 들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과학자의 세대교체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면서 그 핵심 인물로 이 두 사람을 지목했다.

북한은 제2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제재로 지난 2010년께 기계공업부로 바꿨던 군수공업부라는 명칭 또한 4차 핵실험을 앞두고 되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대남 온건파인 김양건 전 당 비서가 핵실험 준비가 한창이던 지난달 29일 북한언론의 보도대로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 아니라 군부 등 강경파에 의해 교통사고로 위장 살해됐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처럼 김정은 제1위원장은 핵실험 실행을 위한 준비를 끝내 놓고도 지난 1일 육성 신년사에선 핵 관련 언급을 자제하면서 '연막전술'을 펼쳤다.

앞선 '수소폭탄' 발언으로 국제사회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던 김 제1위원장이 의도적으로 신년사에서 발언 수위를 조절했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물론 북한이 제4차 핵실험 이후 '수소폭탄 실험이 100% 독자 기술로 이뤄졌다'고 주장한 점 등을 근거로 김 제1위원장의 올해 신년사에서 처음 언급한 '자강력 제일주의'라는 표현이 핵실험을 시사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뒤늦게 나왔다.

이후 북한의 핵실험은 '카운트 다운' 단계로 진입했다. 신년사 발표 사흘 뒤인 지난 3일 김 제1위원장은 핵실험 최종명령서에 사인했고 북한 당국은 지난 6일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은 원자폭탄 실험 성공 즉시 관련 인력의 ⅓을 수소폭탄 연구 쪽으로 돌렸다"면서 "북한도 멀게는 2013년 3차 핵실험을 마친 뒤 핵과학자 등의 일부를 수소폭탄 연구에 투입하며 차근차근 준비해왔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