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3' 2년새 10조 적자… 조선업계 '날개없는 추락'

먹구름 가득한 국내 조선업
#1. ‘SPP조선의 존속 보장을 간절히 호소합니다.’ 최근 경남 사천의 중견 조선업체 SPP조선 근로자와 지역시민 2만5000여명이 이런 내용으로 서명한 탄원서가 각계에 제출되고 있다. 청와대 게시판에도 청원이 수백건을 헤아린다. SPP조선은 수년간의 구조조정 노력으로 지난해 흑자 전환했지만, 채권단의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 거절로 8건의 신규수주 계약이 취소되는 등 사정이 어렵다. 채권단의 구조조정 방안은 인수·합병(M&A)을 통한 ‘새 주인 찾기’인데, 오는 14일 본 입찰에서 조선업을 지속할 수 있을지 운명이 결정된다.#2. 대우조선해양은 최근 아프리카의 한 선주와 맺은 1조3297억원 규모 드릴십 2척의 계약이 무기한 연기됐다. 앞서 미주지역 선주와 체결한 1조2486억원 규모의 드릴십도 지난해 말 계약이 종료됐지만 인도는 무기한 연기됐다. 이는 해당 선주들이 유가 하락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거나 당장 드릴십을 가져가도 쓸 데가 없다 보니 빚어진 계약 미이행이다. 지난해 국내 대형 조선사들은 이런 계약 미이행과 인도 거부 등으로 최대 3조원의 손실을 기록할 뻔했다.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주력산업인 조선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 후 상선 발주가 감소하고 유가 하락으로 해양 플랜트 수요마저 사라지는 바람에 국내 조선사는 지난해 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이런 와중에 대 중국 경쟁력 열세는 고착화하는 모습이고, 일본은 시장 점유율을 높이면서 거세게 추격해오고 있다. 조선업 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 전체가 처한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클릭하면 큰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걱정스러운 ‘수주 가뭄’

12일 조선·해운 전문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선박 수주량은 262척, 1015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에 그쳐 중국에 4년 연속 1위 자리를 내줬다. 중국은 지난해 452척, 1025만CGT를 기록했다. 일본은 362척, 914만CGT로 턱밑까지 추격해왔다. 이에 따라 CGT 기준 세계시장 점유율은 중국이 30.3%로 1위, 한국은 30.0%로 2위에 그쳤다. 작년 11월까지만 해도 한국은 중국에 우위를 점했지만, 연말 수주가 끊기면서 다시 1위를 내주고 말았다.

이런 수주 감소가 추세화하는 것은 아닌지 업계 안팎에서 깊은 우려가 제기된다. 중국은 지난해 하반기 692만CGT를 수주한 반면, 한국은 절반도 안 되는 342만CGT에 그쳤다. 일본(442만CGT)에도 뒤진다. 월별로는 11∼12월 한국과 중국은 각각 31만CGT, 248만CGT를 기록해 중국이 8배나 많았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 ‘빅3가’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면서 영업이 위축된 데 따른 결과”라고 설명했다. 중국과 일본이 초대형 컨테이너선과 유조선 등 그간 한국이 독점해온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을 적극 공략한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처럼 수주 경쟁 등에서 뒤지면서 지난해 조선 빅3인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은 8조원 규모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조선업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빅3 모두 조단위 손실을 기록했다. 직전 해 실적까지 더하면 적자는 10조원으로 불어나는데, 현대·기아자동차가 꼬박 1년 영업한 이익이 사라진 셈이다.

◆올해도 ‘실적 개선’ 쉽지 않을 듯

조선업계는 올해도 저유가 기조로 신시장이라고 할 만한 에코십(친환경선박) 투자가 위축되고, 해양 플랜트 침체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기업의 수주는 1000만CGT선이 무너질 전망이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올해 수주량과 수주액이 작년보다 각각 27%, 29% 감소한 800만CGT, 170억달러 수준으로 전망했다. 양종서 선임연구원은 “신규투자는 내년부터 서서히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는 과잉공급, 과잉경쟁 상태인 조선업의 몸집 줄이기를 추진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최근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등 관계기관과 회의를 갖고 “구조적 취약성을 해소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해양사업에 주력했던 빅3는 납기지연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의 악순환에 빠졌고, 중소 조선사는 고비용·저수익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정부 측 분석이다. 다운사이징을 통해 취약한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업계도 대대적인 감원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빅3에서만 임직원 3000여명이 회사를 떠났고 중소형사와 협력사까지 합치면 50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당분간 시황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현일 기자 con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