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폭락에 신흥국 부도 위험 급등…"정권교체 가능성도"

유가 폭락에 원자재에 의존하는 자원 신흥국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취약 신흥국으로 꼽혀온 국가들의 통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당국의 환율 방어에도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13일 블룸버그 자료에 따르면 유가가 연초 이후 급락세를 보이면서 자원 신흥국들의 국가 부도 위험이 급등하고 있다. 전날 기준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5년 만기 신용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은 196.01bp로 전날보다 6.01bp 올랐다. 이는 2009년 5월 이후 최고치다.

사우디의 CDS 프리미엄은 3개월간 67.4bp 올랐고, 작년 12월 석유수출국회의(OPEC) 회의 이후 줄곧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사우디의 1년 전 CDS 프리미엄은 80bp를 밑돌았다는 점에서 지난 1년간 150%가량 오른 셈이다.

베네수엘라의 CDS 프리미엄도 같은 날 하루 만에 830.62bp 올라 6,266.56bp를 기록했다. 3개월간 변동폭도 1,376.0bp에 이른다.

브라질, 콜롬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러시아 등의 CDS 프리미엄도 3개월간 각각 69.7bp, 59.5bp, 100.3bp, 33.5bp 상승했다.

전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2월물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전장보다 배럴당 97센트(3.1%) 낮아진 30.44달러에 마감했다. 유가는 장중 한때 2003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30달러 아래로 내려앉았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2월물 브렌트유는 77센트(2.44%) 떨어진 배럴당 30.78달러를 기록했다.

유가는 올해 들어 지난 4일부터 7거래일 연속 하락해 WTI 기준으로 연초 이후 17.81%가량 하락했다.

◇ 자원 신흥국 총제적 위험…재정적자 압박 가중

유가가 연초부터 지속적으로 추락하면서 러시아, 베네수엘라,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가시지 않고 있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들 국가의 경제적, 정치적 위험을 정량화하긴 어렵다면서도 원유 수출국들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제적으로는 늘어난 재정적자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고, 국가 신용등급마저 강등될 위험이 있다는 게 WSJ의 지적이다.

WSJ는 정치적으로는 베네수엘라처럼 정권 교체 등의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CNN머니는 이에 앞서 유가 하락에 따른 취약국으로 베네수엘라, 사우디아라비아, 나이지리아, 러시아, 이라크 등 5개국을 꼽은 바 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석유매장량을 자랑하는 나라이지만, 유가 하락에 경기가 계속 추락하면서 경제가 붕괴 직전이다. 인플레이션은 작년 150%를 넘어섰고, 올해는 20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채권을 갚을 여력이 없고, 심지어 음식과 기초생활용품마저 공급이 달리는 상황이다.

러시아는 정부 수입의 절반가량이 원유와 가스 수출에서 나온다. 그러나 유가 하락과 서방의 경제 제재로 몇 년째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예산은 유가 50달러에 기반해 산정된 것이라는 점에서 유가 30달러대로는 재정이 버틸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 사우디 신용 위험 급등…국채발행·아람코 상장

사우디의 신용 위험이 2009년 이후 최고치로 치솟는 등 급등하고 있다. 이는 유가 20달러대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원유 수출에 재정수입의 70%를 의존하는 사우디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재정 확충을 위해 올해 첫 외화표시 채권을 발행키로 했으며, 국영 에너지업체 아람코도 상장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사우디의 재정적자는 1991년 최대치로 확대됐고, 작년 11월까지 순외화자산은 10개월 연속 하락해 2006년 이후 최장 기간 하락세를 보였다.

사우디의 국영업체 사우디 일렉트릭서티의 채권 가격은 연초 이후 지난 10일까지 0.49% 오른 4.6%를 기록해 역대 최고치를 나타냈다. 사우디는 외화표시 국채가 아직 없어 실제 사우디 일렉트릭서티의 채권이 벤치마크로 국채를 대신한다. 미 국채와의 금리차도 역대 최고치로 벌어졌다.

사우디는 작년 말 재정난에 연료 보조금을 대폭 줄이고, 국내 휘발유 가격은 최대 67%까지 인상하기로 한 바 있다.

사우디의 2015년 재정적자는 건국 83년 만에 사상 최대인 980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사우디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15%에 해당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앞서 저유가 여파로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의 재정적자가 GDP의 19.5%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며 재정적자에 대비해 보조금 삭감, 세제 개편 등을 권고한 바 있다.

에버딘 에셋 매니지먼트의 앤소니 사이몬드 매니저는 "사우디는 대규모 외환보유액이 있고, 부채는 극히 낮다"면서도 "문제는 유가가 현 수준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지가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바클레이즈는 최근 보고서에서 "주요 원자재의 최근 가격 하락은 지난 30년간 있었던 어떤 위기 때보다도 더 심하며, 투기적 포지션도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때보다 훨씬 더 비관적이다"라고 우려했다.

◇ 나이지리아 외환보유액 빠르게 고갈…비은행권 달러 매입 규제

유가 하락은 당장 원유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들의 통화 가치를 폭락시키고 있다.

당국이 외환보유액을 활용해 자국 통화 가치 하락을 방어하면서 외환보유액도 빠르게 고갈되면서 우려가 커지는 모습이다.

지난 11일 세계 6위 원유수출국이자 아프리카 최대 원유생산국인 나이지리아는 외환보유액이 빠르게 줄어들자 비은행권 외환 거래업체에 대한 달러 매각을 금지하고 상업 은행들에 달러 예금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나이지리아는 외환보유액의 95%를 원유 매각을 통해 벌어들인 외화로 채우며 재정수입의 70%, 수출의 75~90%를 원유산업에 의존한다. 그러나 나이지리아 통화가치가 암시장에서 미 달러화에 대해 역대 최저치로 추락하면서 외환 불안이 확산하고 있다.

나이지리아의 외환보유액은 280억달러로 2014년 6월의 370억달러에서 1년 6개월간 24% 이상 줄었다.

블룸버그 자료에 따르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외환보유액도 작년 11월 말 기준으로 382억달러로 지난 1년간 7.3% 줄었다. 자국 통화 가치가 폭락한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의 외환보유액도 같은 기간 9.5%(작년 9월 말 기준), 12.3% 감소했다. 베네수엘라의 외환보유액은 47억달러, 아르헨티나는 206억달러에 그친다.

산유 부국인 사우디의 외환보유액도 작년 9월 말 기준 6천421억달러로 1년간 12.1% 감소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최근 나이지리아를 방문한 자리에서 유가 하락으로 나이지리아 은행권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나이지리아 기업들의 레버리지 증가와 달러화 부채 증가로 취약성이 높아졌다며 재정 악화와 외환보유액 감소로 충격을 관리할 능력이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