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미와 해빙 무드… 중동 패권국 ‘기지개’

서방 경제 제재 해제 이후는 국제사회의 제재에서 풀려난 이란이 중동 패권국으로 부상하기 위해 기지개를 켜고 있다.

핵무기 개발과 관련한 서방의 경제제재가 16일(현지시간) 해제되면서 그동안 막혀있던 원유·가스 수출길이 열려 이란은 국제사회의 주요 ‘플레이어’로 복귀할 수 있게 됐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앞줄 왼쪽)과 아마노 유키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가운데),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앞줄 오른쪽)가 16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IAEA 본부에서 만나 이란의 핵합의 이행을 확인한 뒤 걸어가고 있다.
빈=EPA연합뉴스
이란의 원유 확인매장량은 세계 4위, 천연가스는 러시아와 1위를 다툴 정도로 방대하다. 8000만명에 이르는 내수시장은 단일 국가로는 중동 내 최대 규모다. 이 중 70%가 30대 미만인 데다 고졸 학력 이상의 고급인력도 풍부해 성장 잠재력이 무한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번 제재 해제로 이란이 1000억달러 규모의 경제적 이익을 취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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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상승세를 가장 경계하는 곳은 사우디아라비아다.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는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종파적으로 대척점에 있는 데다 원유 시장에서도 대립한다. 이란과 사우디는 한때 정상회담을 여는 등 봄바람을 타기도 했으나 2003년 이라크전 이후 이란이 이라크-시리아-레바논에 ‘시아파 벨트’를 형성하면서 양국은 다시 적으로 돌아섰다.

2016년 새해가 밝자마자 사우디는 자국의 시아파 지도자 4명을 집단 처형하면서 이란과 정면 충돌했다. 성난 이란 시위대는 테헤란 주재 사우디 대사관을 공격했고, 사우디는 이를 구실로 이란과 외교관계 및 교역 단절을 선언하면서 중동 정세가 경색 국면을 면치 못하고 있다.

양국이 팽팽한 긴장상태를 이어왔으나 그동안 미국이 일방적으로 사우디 편에 선 데다 서방의 경제제재로 이란이 고립되며 중동 내 힘의 균형은 사우디로 기울었다. 이란은 핵무기 개발이나 시아파 벨트에 대한 군사적 지원으로 가까스로 균형을 맞춰왔다.

그러나 이번 경제제재 해제로 이란은 사우디에 열세였던 경제력과 대서방 외교지형을 동시에 보충할 수 있게 됐다. 우선 미국과 사우디의 간극이 벌어지는 사이 핵협상 타결을 고리로 이란과 미국은 해빙 무드에 접어들었다.

이란 영해상에서 지난 12일 미 해군 경비정 2척과 군인 10명이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됐다가 하루 만에 전격 석방된 일이 단적인 예다. 이를 두고 이란 외무부는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의 전화통화가 신속한 석방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핵협상의 주역인 두 외무장관도 이에 대해 핵협상 효과라면서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세계 주요국의 기업들도 이란 진출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해 핵합의 타결 직후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경제장관이 메르세데스벤츠와 지멘스, 폴크스바겐 등 자국의 주요 기업 관계자 등 100여명의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이란을 방문해 고위 관료들과 만났다고 전했다.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스위스 등에서도 외무장관과 경제관료들이 이란을 방문해 경제 교류확대를 논의해 왔다.

이란 통신사 메흐르 뉴스는 경제제재 해제가 예고된 지난해 이미 48개국이 145개 사절단을 이란에 파견했다고 보도했다.

이란이 핵합의에서 약속한 핵활동 제한 의무를 재빠르게 이행해 제재 해제 시점을 최대한 앞당긴 데에는 사우디와 경쟁이 오히려 추진력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지수 기자 v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