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현장] '사시 낭인' 비판 하더니… '변시 낭인' 전락 위기

법학전문대학원 개원 8년차… 불안한 앞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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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생 A씨는 4월로 예정된 제5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발표를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하긴 했으나 ‘마지막 시험’이라고 생각하니 불안감을 떨치기가 힘들다. 그는 2009년 로스쿨 1기생으로 뽑혔을 때만 해도 ‘법조인이 된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2012년부터 내리 4차례 변호사시험에 떨어진 A씨는 어느덧 최후의 기회로 내몰렸다. 현행 변호사시험법에 따라 5회 연속 낙방하면 응시 자격 자체가 박탈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사법시험을 대체하기 위해 도입한 변호사시험이 시행 5회 만에 중대한 기로에 섰다. ‘응시횟수 제한’ 규정에 따라 로스쿨을 졸업하고도 변호사 자격을 따지 못하는 첫 사례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응시 인원은 해마다 느는데 합격자 수는 1500명 안팎으로 고정돼 있다 보니 합격률이 역대 최저인 50%대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비싼 학비 등을 근거로 로스쿨을 비판하며 “사시를 계속 존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 또한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어느덧 개원 8년차를 맞은 로스쿨, 무엇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로스쿨 낭인 쏟아지나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변호사 시험에서 4번째 응시한 로스쿨 출신 수험생은 122명이고 이 중에서 26명이 합격했다. 지난해에도 낙방한 변호사시험 5수생 96명은 이달 초 치러진 제5회 변호사시험마저 낙방하면 법조인으로서 꿈을 접어야 할 판이다. 일종의 ‘변시 낭인’인 셈이다.

변호사시험 합격률은 점차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법무부가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매년 1500명대로 유지하고 있어 변시 낭인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참여연대 분석에 따르면 3년 뒤인 2019년부터 합격률이 30% 아래로 하락하고 궁극적으로는 24%로 합격률이 수렴한다. 법무부가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늘리거나 사실상의 자격시험 형태로 전환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이는 변호사업계 불황 등 이유로 쉽게 선택할 수 없는 대안이다. 애초 사법시험 폐지의 논거로 사용된 ‘고시 낭인 망국론’이 로스쿨 체제 도입 수년 만에 ‘변시 낭인 망국론’으로 되살아나는 꼴이다.

◆음서제와 실력


로스쿨 제도에 쏟아지는 비판 중 가장 치명적인 건 ‘현대판 음서제’라는 말이다. 로스쿨 졸업에 거액이 들뿐더러 졸업 후에도 주로 부모의 ‘후광’에 힘입어 법원과 검찰, 대형 로펌이나 사기업 등으로 간다는 비판이다. 주로 사법연수원 출신 법조인들이 지적하는 얘기다.

일단 공직을 제외하고 로펌만 보면 ‘경험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가량 사법연수원 출신은 성적에 따라 갈 수 있는 로펌 순위가 정해져 있지만 로스쿨 출신은 관례를 ‘역행’하는 사례가 꽤 있다. 그 뒤에는 “아버지가 고위 공직자다” ”친척이 대기업 임원이다” 등 뒷말이 따라 붙는다. 대형 로펌 관계자들도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변호사에게 부모와 집안의 후광이 있다면 로펌 취업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사기업들 역시 “‘든든한 뒷배’가 있는 변호사를 쓰는 건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한 중견 변호사는 “로펌은 결국 사기업이다. 돈 많이 벌어주는 직원을 쓰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대형 로펌과 사기업의 행태에 사법연수원 출신 변호사들은 불만을 숨기지 않는다. 사실상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을 ‘영업상무’로 쓰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기본적 법률소양도 없이 ‘영업’만 하는 변호사는 ‘법조 브로커’나 진배없다”는 과격한 말도 서슴지 않는다. 로스쿨의 학생 선발 과정부터 ‘빽’이 작동한다는 이야기가 적지 않아 음서제 논란은 좀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변호사 뽑아놓으면 끝?


‘변시 낭인’과 ‘음서제’ 논란을 돌파하는 정공법은 ‘실력’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다른 직업과 전공에서 쌓은 전문지식과 로스쿨에서 기른 법률소양을 합쳐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애초 로스쿨 도입 취지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동떨어져 있다.

합격률이 높을 만한 인물을 주로 뽑다 보니 사회 경험이 풍부한 사람보다는 갓 학부를 졸업한 학생들이 로스쿨로 진학하는 비율이 절대적이다. 실무 경험자들을 교수로 채용해 현장성이 풍부한 교육을 하겠다는 로스쿨 도입 취지 역시 실제 교육 현장에선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로스쿨생들은 “강의력이 부족하다”며 실무 법조인 출신 교수의 수업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설혹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가 됐다 해도 로펌 등 대부분의 직장은 이들의 재교육에 무관심하다. 선례가 없고 돈과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결국 로스쿨과 관련한 이해당자사들은 많이 생겼지만 법조인을 제대로 양성할 책임을 확실히 지고 있는 곳은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기존의 사법시험 체제로 완전 회귀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부담해야 할 사회경제적 비용이 막대하다.

홍익대 법대 장용근 교수는 “최소 10년 이상 로스쿨과 사시를 병행해 어느 제도가 법조인 양성에 탁월한지 비교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라며 “병행 실시로 두 제도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최소 10년 이상의 검증을 거친 뒤 선택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박현준·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