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감자 재배 중" 현실이 된 '가상현실'

[혁신이 기업 미래 바꾼다] ② '기어VR'로 시장 대중화 나선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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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폐막한 세계 최대의 가전 전시회 ‘CES’. 관람객들의 발길을 가장 많이 붙잡은 ‘핫플레이스’는 단연 삼성전자 부스였다. 특히 메인 부스와 별도로 마련된 가상현실(VR) 기기 ‘기어VR’를 이용한 4차원(4D) 체험존에는 개막일인 6일에만 1만여명이 찾았을 정도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삼성전자는 기어VR를 쓰고 의자에 앉으면 360도 입체영상을 통해 에버랜드의 인기 놀이기구 ‘우든코스터’와 ‘호러 메이즈’ 등을 직접 타고 있는 듯한 가상현실을 제공했다. 이 체험을 하기 위한 줄이 늘 길게 이어졌다고 삼성전자 측은 전했다.

현장을 방문했던 강원도 삼성전자 부장(무선사업부)은 18일 “놀이기구를 타고 낙하하는 장면에는 실제 타고 있는 듯 두팔을 높이 들어올리거나 괴성을 지르는 관람객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가 퍼스트 무버로 나서 모바일용 VR 기기로는 최초 상용화한 기어VR가 시장 대중화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가전 전시회 ‘CES’에서 삼성전자의 ‘기어VR’를 쓴 관람객들이 다양한 몸짓으로 가상현실(VR)을 즐기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CES에서 확인한 자신감


가상현실은 가상환경을 실제처럼 구현해 눈앞에 보여주고, 소리도 들려주면서 상호작용까지 체험하게 해주는 기술이다. 거실에 앉아 시·공간을 초월해 과거 주라기시대를 찾아 공룡을 만나거나 먼 우주로 탐험여행을 떠나는 공상과학과 같은 현실을 가능케 한다.

이에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1차 PC, 2차 스마트폰에 이어 VR가 3차 IT혁명을 촉발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물론이고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엔비디아, 소니, 인텔, HTC 등이 수십억달러를 투자한 사업이다.

올해 CES에 마련된 VR 전시장에는 48개 업체가 부스를 꾸려 시장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CES 기조연사로 나선 개리 샤피로 전미소비자기술협회장도 “올해 CES를 보면 VR 분야에서 가장 많은 변화가 감지됐다”며 “공상과학에서나 볼 수 있던 기술이 현실에 등장하고 있다”고 놀라움을 나타냈다.

삼성은 이 자리에서 오큘러스와 협업해 지난해 12월 출시한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HMD)인 기어VR를 선보였다. 안경 형태로 머리에 쓰는 기기로, 삼성전자 스마트폰을 끼우면 VR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고안됐다.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 VR’를, 페이스북 자회사인 오큘러스VR는 ‘오큘러스 리피트’를, HTC는 ‘바이브’를 각각 앞세워 삼성과 각축을 벌였고, 3D인라이프와 앤트VR 등 저가를 앞세운 중국 신생업체도 눈에 띄었다. 미 항공우주국(NASA)도 부스를 차릴 정도로 현장 열기는 뜨거웠다고 한다.

삼성전자 측은 이번 CES가 기어VR의 기술적 우위와 합리적인 가격 등을 통해 시장 선점의 자신감을 확인한 무대라고 평가했다.

VR 기기는 이를 착용한 이가 시선을 돌리면 이에 따라 새 가상현실이 곧바로 따라붙어 보여줘야 하는데, 사람 움직임과 화면이 바뀌는 속도 간 지연을 얼마나 줄이느냐가 성능의 관건이다. 기어VR는 보수적으로 잡아도 지연속도가 2밀리초(1밀리초는 1000분의 1초)에 불과해 보통 사람이 그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다고 한다. 시야각도 모바일 VR 기기 가운데는 가장 넓어 96도에 달한다.

같은 HMD인 오큘러스 리프트는 현장에서 성능에 비해 599달러(약 72만5000원)에 달하는 가격이 비싸다는 불만이 터졌다고 한다. 이에 비해 기어VR는 12만9800원의 합리적인 가격에도 비교적 완성도 높은 가상현실을 제공한다. 중국 업체는 35달러(약 4만2000원)짜리 모바일용 VR 기기를 선보였으나 성능은 미지수라는 냉정한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기어VR 짝퉁이 아니냐’는 비아냥도 샀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역발상 전략의 승리


VR 기기는 아직도 PC 기반이 주류를 이룬다. 그래서 기어VR가 출시되기 전까지 휴대용 모바일 기기로는 완성도 있는 가상현실을 제공하기는 힘들다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휴대해야 하는 만큼 PC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몸체에 비슷한 성능을 내야 하는 기술적인 한계가 무엇보다 큰 난관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스마트폰을 통해 모바일 기술을 축적한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의 생각은 반대였다. 거치적거리는 선이 없어 스마트폰처럼 언제 어디서나 가상현실을 즐길 수 있는 모바일을 통해 공급해야 진정한 혁신을 이룰 수 있고, 소비자에게도 신선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모바일에 도전했다. 모바일용 VR 기기를 반신반의하던 오큘러스를 설득해 협력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도 삼성전자의 이러한 확고함 믿음과 기술력에서 비롯됐다.

기어VR의 시장 공략전략도 게임에 쏠려 있는 PC 기반 VR 기기와 차별화된다. 삼성의 혁신조직인 GIC(글로벌이노베이션센터)를 이끄는 데이비드 은 사장은 이번 CES에서 “VR라고 하면 게임과 엔터테인먼트만 생각하기 쉽지만 커뮤니케이션, 교육, 트레이닝 등 다양한 분야로 응용범위를 넓힐 수 있다”며 “외과수술을 어떻게 하는지 실습을 시킬 때 VR를 한번 응용해 보면 좋은 쓰임새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메리어트호텔과는 제휴를 맺고, 투숙객을 상대로 호텔 측이 자랑하는 다른 객실이나 다른 지역의 호텔 서비스 등을 안내하는 데 기어VR가 쓰이고 있다.

황계식 기자 cul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