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로봇의 인간대행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살 때 무인계산대를 이용하지 않는 지인이 있다. 계산대에 손님이 길게 줄지어 서 있더라도 기다리는 불편을 감수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고객이 너나없이 무인계산대를 이용하다 보면 수납원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면서 적은 급여를 받는 자리마저 기계에 밀려나게 할 수 없다는 작은 외침이다. 실제로 요즘 사람 없이 기계로만 운영되는 현장은 고속도로 톨게이트, 은행 점포 등으로 계속 넓어지고 있다.

스위스 다보스포럼을 주관하는 세계경제포럼(WEF)은 엊그제 발표한 ‘일자리의 미래’라는 보고서를 통해 “인공지능과 로봇기술, 생명과학 등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이 닥쳐 상당수 기존 작업이 사라지고 기존에 없던 새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면서 5년 내 선진국에서는 5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한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10년 내 로봇이 대체할 가능성이 90∼100%인 직업으로 스포츠 심판과 텔레마케터, 법무사를 들었다. 택시기사나 어부, 제빵사, 패스트푸드 점원이 기계에 밀려날 확률도 80∼90%에 이른다. 로봇으로 주식 시세나 스포츠 결과를 기사로 쓰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으니 기자라는 직업도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

기계나 로봇이 인간을 대신하는 세상은 수많은 영화에서 그려졌다. 혼란에 빠진 도시를 구하는 경찰(‘로보캅’)이 등장하고, 어린아이의 꿈을 이뤄주는 격투기 선수(‘리얼 스틸’)가 나온다. ‘바이센테니얼맨’의 앤드루 마틴과 ‘A. I.’의 데이비드처럼 인간이 되기를 꿈꾸기도 하지만 영화 속 로봇은 대체로 위험한 존재다. ‘아이로봇’에서는 인간을 공격하고 ‘써로게이트’, ‘터미네이터’ 등에서는 아예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반란을 시도한다.

국방기술품질원이 그제 발간한 ‘2011∼15 세계 국방지상로봇 획득 동향’에 따르면 로봇이 수색이나 구조를 넘어 무기를 들고 전투하는 영화 장면이 현실화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최초로 2족인간형 로봇펫맨을 개발하고 2025년쯤 전장에서 운용할 계획을 갖고 있다. 러시아와 일본, 영국 등도 전투 로봇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데서 나아가 인간을 위협할 날도 멀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아찔하다.

박희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