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지로 다시 모아놓은 ‘도자사의 맥’

비색 파편의 향연… 넘쳐나는 생동감 가마터는 흙이 좋고, 땔감으로 쓸 나무가 많은 곳에 몰렸다. 강을 끼고 있거나 바다가 가까우면 더욱 좋았다. 소비지로 옮기기에 좋아서다. 전라남도 강진이나 부안, 황해도 해주, 함경북도 회령 같은 곳이 그랬다. 수많은 도자기들이 이곳에서 생산돼 각지로 퍼져 나갔다. 뿔뿔이 흩어졌던 이 도자기들을 같은 고향의 이름 아래 한데 모아놓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도자사의 맥을 짚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전남 강진에서 출토된 청자 파편들을 모아 테마전 ‘강진 사당리 고려청자’를, 호림박물관은 기획전 ‘해주요와 회령요의 재발견’을 열고 있다. 고려 왕실에서 썼던 최상급 청자의 다양한 면모와 근대기 우리나라 도자기에 표현된 색채의 향연을 맛볼 수 있다. 수백년 시간의 간격만큼 전시품의 분위기가 달라 두 전시회를 비교하며 감상하는 재미에 빠져도 좋다. 

강진청자
◆강진-파편이 증언하는 고려청자의 향연

“양이정에는 청자 기와를 덮었다.” ‘고려사’의 이 기록은 고유섭이 청자 기와를 구워낸 가마터를 찾아 나선 계기였다. 그의 바람은 제자 최순우로 이어졌다. 1964년 봄, 강진 사당리를 방문한 최순우에게 한 촌부가 청자 조각이 가득 담긴 소쿠리를 내밀었다. 그 안에 청자 암막새 조각이 들어 있었다.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됐고 청자 기와가 무더기로 나왔다. 청자 기와는 청자가 건축 부재로까지 쓰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 청자 제작 기술의 발전 정도를 확인시켜 주기도 한다. 기와처럼 덩치가 큰 것은 제작과정에서 휘어지거나 터지는 사례가 많아 높은 기술력 없이는 만들기 힘들다. 

청자기와
자판(磁板)은 사당리의 또 다른 보물로 꼽힌다. 무늬 반대면에는 유약을 씌우지 않아 벽면에 붙이는 타일이 아니었을까 추정하는 유물이다. 전시회는 사당리에 출토된 자판 파편과 함께 “세밀하고 유려한 상감 기법을 보여주는” 개성 출토의 ‘청자 모란 무늬 자판’ 한 점을 소개하고 있다.

금속기를 닮은 무늬 없는 청자 파편들은 “장식을 절제하고 빛깔과 형태를 중시했던 고려청자 전성기 초반의 모습”을 보여준다. 녹색빛과 푸른빛, 투명함이 공존해 어느 하나의 색깔로 규정하기 어려운 특유의 비색을 감상할 수 있기도 하다. 고려청자의 주된 관심과 가치는 시간이 지나면서 상감 무늬로 집중됐다. 11, 12세기에는 음각, 양각, 압출양각 기법이 주를 이뤘으나 13, 14세기에는 상감기법이 유행했다. 국화, 모란, 학, 물가풍경, 물고기, 용 등 다양한 무늬가 상감으로 표현됐다.

박물관 관계자는 “강진에서는 누가 봐도 최상품이라고 할 만한 청자의 파편들이 대량으로 출토됐다”며 “고려 왕실 전용이었다는 점이 강진 가마터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해주요
◆해주·회령-넘쳐나는 생동감과 대범함


파편조차 고급스러움을 보여주는 강진의 청자 유물들과 달리 해주의 백자에는 서민적인 분방함과 활발함이 가득하다. 해주백자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특색 있게 발달한 지방의 대표적인 도자기다. 문양이 없는 순백자도 있지만 대부분 청화, 철화, 녹색의 안료 등을 사용하여 문양을 그려 넣었다. 문인화의 영향을 받은 사군자나 파초, 길상적 의미를 내포한 물고기, 모란, 석류 등의 다양한 무늬가 있는데 “한 폭의 민화를 보는 듯 생동감 넘치고 대범하게 장식된 것”이 특징이다. 박물관은 “해주백자는 조선후기 신분제 폐지로 인한 서민문화의 발달과 관요의 폐지를 통해 지방가마가 발전하는 시대적 변화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회령요
함경북도 회령 일대에서 만들어진 회령도기의 연원은 고려시대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중간에 맥이 끊겼고, 근대기에 접어들자 재현됐다. 두만강 유역의 질 좋은 흙에 짚의 잿물을 사용한 유약을 입혀 오묘한 빛깔을 만들어 냈다. 일제강점기 회령도기의 색감에 반한 일본인들이 ‘영원 불멸의 색’이라고 호들갑을 떨 정도로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회령도기에 나타난 강한 원색의 무늬는 현대적인 시각으로 봐도 세련미가 넘친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