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 봤지? 내가 손흥민이다”… 시속 108.5㎞ 캐넌슛 작렬

FA컵 레스터시티전 ‘원맨쇼’ 중앙선과 페널티 지역 중간쯤에서 손흥민(24·토트넘 홋스퍼)은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처럼 공의 방향을 예의주시했다. 공이 중앙선 뒤편에서 상대 진영으로 넘어오는 순간, 손흥민은 양발을 잽싸게 움직여 페널티 지역 우측 공간으로 파고들었다. 중원에서 팀 동료 에릭 라멜라가 찔러준 공을 톰 캐롤은 잡지 않고 왼발로 손흥민에게 바로 연결했다. 레스터 시티의 포백은 손흥민의 침투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쉴 새 없이 그라운드를 누비던 손흥민은 공을 잡고 오른발로 두 번 드리블한 뒤 강력한 슈팅을 날렸다. 공은 회전을 한 번도 하지 않고 그대로 골대 우측 구석에 빨려들어갔다.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이 21일 영국 레스터 킹 파워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 축구협회(FA)컵 64강전 레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강력한 슈팅을 날리고 있다.
레스터=Reuters연합뉴스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손흥민의 슈팅 거리는 20.1, 슈팅부터 골라인까지 걸린 시간은 0.61초, 슈팅 속도는 시속 108.5㎞에 달했다. 보통 선수들의 평균 슈팅 속도가 90∼100㎞인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대포알 슈팅이다. 전설적인 골키퍼 피터 슈마이켈의 아들로 올 시즌 팀 상승세를 이끌어 주목받고 있는 캐스퍼 슈마이켈이 힘껏 손을 뻗어 봤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손흥민은 21일 영국 레스터 킹 파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2016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64강 재경기 레스터 시티와의 원정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전반 39분 선제골을 작렬한 손흥민은 후반 21분 나세르 샤들리에게 송곳 같은 패스를 연결해 추가 득점을 도왔다. 지난 11일 FA컵 64강전 첫 경기에서 2-2로 비겼던 토트넘은 이날 승리로 32강에 진출했다.

83분간 그라운드를 누빈 손흥민은 ‘원맨쇼’를 펼쳤다. 상대는 프리미어리그(EPL) 2위를 달리고 있는 레스터 시티. 손흥민은 공장 노동자 출신으로 올 시즌 EPL 득점 선두(15골)를 질주하는 제이미 바디가 보는 앞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현지 언론도 손흥민에게 찬사를 보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이날 손흥민의 83분은 지금까지 토트넘에서 활약한 경기 중 최고였다”고 극찬하며 손흥민을 경기 최우수선수(MOM)로 선정했다. 유로스포츠도 손흥민을 MOM으로 뽑으며 양팀 통틀어 가장 높은 평점 9점을 부여했다.

손흥민이 한 경기에서 골과 어시스트를 동시에 기록하기는 2014년 10월 이후 15개월 만이다. 그는 “중요한 경기에서 골을 넣은 데다 팀이 이겨 기쁘다”며 “운도 따랐지만 톰 캐롤의 패스가 좋았고 볼 터치도 잘돼 골이 들어간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5경기 만에 득점에 성공한 손흥민은 이번 시즌 FA컵와 EPL 등 모두 합쳐 두 자릿수 공격포인트(5골 6어시스트)에도 진입했다.

손흥민은 최근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대부분 교체로 투입된 탓에 공격포인트와도 인연이 없었다. 후반 38분 손흥민은 델리 알리와 교체돼 그라운드에서 나왔다. 경기 전 하얗던 손흥민의 유니폼은 때로 얼룩졌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절실함이 유니폼에 드러났다. 손흥민은 24일 이청용의 크리스털 팰리스와 정규리그 경기를 앞두고 있다. 그는 “리그 데뷔골을 크리스털 팰리스전에서 넣었다. 공수 모두 강한 팀이지만 잘 준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최형창 기자 calli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