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은빈(26)씨 앞에는 알록달록한 노트가 여러 권 놓여 있었다. 모두 일기다. 2009년 6월4일, 처음 시작된 김씨의 일기는 2014년 5월11일에 막을 내렸다. 그 이후 최근까지는 취업준비를 포함한 개인 사정으로 일기를 자주 쓰지 못했다며 김씨는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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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은빈(26)씨 앞에는 알록달록한 노트가 여러 권 놓여 있었다. 모두 일기다. |
다음은 김은빈 씨와의 일문일답.
- 자필 일기를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 어머니가 조금 엄하셔서 많이 혼나면서 자랐어요. 긴장도 쉽게 하는 성격이었고요. 대학입학 하면서 심리상담을 받았는데, 상담소에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우유부단하고, 겁먹은 상태’라는 결과가 나왔다고요. 상담소 선생님께서 자신을 모니터링해보고, 제3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훈련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셔서 그때부터 일기를 쓰게 됐어요. 2009년 6월4일이 첫 번째 일기네요.
- 쓰면서 가끔 지겨울 때가 있을 텐데요
▲ 처음에는 습관들이기 어려워서 하기 싫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일기가 아니면 하루를 돌아볼 시간조차 없는 것 같아서 조금 억지로 쓰긴 했는데, 손에 익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일기를 쓰게 되더군요. 쓰지 않으면 (하루를) 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일기는 주로 밤에 썼는데, ‘왜 그런 행동을 했지?’ 혹은 ‘왜 화가 났을까?’하는 골똘히 생각하다 보면 ‘아 그랬구나’ 이유도 알게 되더라고요. 일기 분량은 보통 1장인데, 많을 때는 2장을 넘길 때도 있어요.
- 일기를 쓰면서 느낀 마음의 효과가 있었는지?
▲ 옛날과 비교하면 많이 나아졌죠. 거절도 못 하고 누군가 저를 쳐다보면 ‘나한테 화가 났나’하는 생각부터 했어요. 낯선 사람도 못 만났고요. 그런데 이렇게 제가 먼저 인터뷰를 신청했으니 많이 괜찮아진 거겠죠?(웃음)
- 글 쓰는 솜씨도 늘어나나요?
▲ 사실 기자가 꿈이에요. 그런데 제가 글을 잘 쓰는 편이 아니라서 차마 그 질문에는 답하지 못하겠어요(웃음). 아무래도 옛날보다는 낫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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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에 새겨진 어느날. 오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망설인 흔적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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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4일. 일기 첫 장에 새겨진 하루. 김은빈 씨의 일기는 5년간 이어졌다. |
- 가장 처음 쓴 일기 내용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 반수 여부를 상담선생님께 어렵게 말했다고 썼어요. 선생님께서 제 편이어서 좋았다고 생각했고요. 반수를 고민한 이유는 어머니의 기대에 만족하고 싶어서예요. 선생님께서는 ‘부모님의 기대에 응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태도가 있다’고 말씀하셨고요. 의사 선생님을 왜 무서워할까라는 이야기로 갑자기 소재가 바뀌었어요(웃음). ‘왜 꾸미지 않나요’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꾸몄는데 안 예쁘면 어떡하느냐’는 답도 했고. 선생님께서는 ‘은빈씨 주의는 항상 남을 향해있다’며 ‘남들 시각을 신경 쓰지 말고, 그 순간 은빈씨의 생각과 기분에 초점을 맞추는 게 어떻겠느냐’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내게 집중해야겠다!’는 내용으로 이어지네요.
- 다른 제보자께서는 2005년부터 자필일기를 거의 매일 써오셨다고 합니다. 그분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 제가 어떤 말씀을 드릴 수 있을지요(웃음). 일기를 왜 쓰셨는지 궁금해요. 저도 나름의 이유 때문에 일기를 썼는데, 그분은 어떤 이유로 10년 넘게 일기를 쓰셨을까요?
- 더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나요?
▲ 일기 쓰면서 많이 변한 점 중 하나는 제 주변 사람도 생각할 수 있게 된 점이에요. 예전에는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서 다른 사람을 평가했는데, 일기 쓰면 아무래도 객관적으로 보게 되니까요. 일기장에 분노나 슬픔을 쏟아내면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게 됐거든요. 피해의식이나 자기합리화에서 벗어나서 주변 사람들을 보게 됐던 거 같아요. 부모님이랑 관계도 좋아졌고, 친구들이랑도 좀 관계가 변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예전엔 제 입장만 생각했거든요. 지금도 그런 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글·사진=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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