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1-24 18:45:55
기사수정 2016-01-24 23:16:02
MB정부 전철 밟을 우려
박근혜 대통령의 ‘북한을 뺀 북핵 5자(한·미·중·러·일)회담’ 제안이 이명박정부 5자회담론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2009년 5월 25일 북한의 제2차 핵실험 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6자회담 회의론을 강력 제기하며 5자회담을 추진했으나 중국을 움직이지 못해 무위로 끝난 까닭이다.
주한 미국대사관 대변인은 23일 성명을 통해 “미국은 박 대통령의 5자회담 요청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미국의 지지와 관련해 “유엔 안보리 제재도 중요하지만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국이 북한을 압박하면 북핵 문제에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5자회담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6자회담 무용론 제기·5자회담 제안→중국의 6자회담 조속 재개 필요성 강조→미국의 5자회담 지지→청와대의 5자회담 계속 추진 표명이 이어지면서 5자회담을 두고 한·미와 중국 사이에 기싸움이 벌어지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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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식료공장 시찰… 여동생 김여정도 동행 노동신문이 23일 보도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금컵체육인종합식료공장 시찰 모습. 수행원 가운데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붉은 원)도 보인다. 연합뉴스 |
중·러가 동의하지 않는 한 5자회담 개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명박정부도 미·일의 지지를 바탕으로 중·러를 설득해 5자회담을 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미·중이 대립하는 동북아 역학구도와 중국의 대외정책에서 차지하는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과소평가한 결과라는 분석이 많았다.
박근혜정부도 2008년 12월 이후 6자회담이 공전하는 상황에서 5자회담의 미니버전 격인 소위 탐색적 대화를 추진했으나 구체적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탐색적 대화는 5자 의견을 조율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한다는 구상이었으나 실체가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연구전략실장은 박 대통령의 5자회담론에 대해 “부시행정부와 이명박정부가 실패한 낡은 접근방법을 창의적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의 5자회담론은 기존 6자회담 틀로는 북한의 핵 포기를 실현하기 힘들다는 나름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핵 능력이 고도화하는 반면 국제사회의 북핵 관심은 떨어지는 상황에서 판을 한 번 흔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제대로 된 제재를 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주된 메시지”라며 “앞으로 북한의 5, 6차 핵실험을 막기 위해서는 중국이 나서야 한다는 점을 계속 강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박 대통령의 공개적인 대중 압박이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동률 동덕여대 교수(중어중문학과)는 “중국은 한국이 한·미·일 회동에서 결정된 미국 요구를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고 느끼는 만큼 박 대통령의 제안에 긍정적 반응을 보일 것 같지 않다”며 “박 대통령이 진정 5자회담론을 관철하기 원한다면 미국보다는 중국 측과 먼저 의견을 조율하고 물밑에서 조용한 전략적 소통을 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5자회담론을 국내용으로 평가절하한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중국의 불응으로 실현가능성 없는 5자회담론을 제기한 것은 북핵 정책과 관련해 국민에게 뭔가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청중·이우승 기자 c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