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 보는 듯… 70년대 일본 판화를 만나다

경기도미술관 ‘영상과 물질…’전 일본의 전통 판화 우키요에는 고흐와 서구인상파 화가들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 일본 현대 판화는 우키요에의 법고창신을 통해 동시대성을 반영하며 새로운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1950년대 이후 일본 판화가들의 해외무대 활동은 일본 판화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한몫했다.

1957년 도쿄 판화비엔날레가 열리면서 일본 판화는 기법이나 주제면에서 국제적 감각을 갖추어 갔다. 아방가르드 흐름 속에서 판화는 실험적 표현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1970년대 일본 판화는 현대를 포착하는 기민한 감각과 농축된 완결도로 세계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우환의 ‘기착지’(1991년, 석판화)
경기도미술관(관장 최은주)이 2월2일부터 4월3일까지 마련하는 ‘영상과 물질?1970년대 일본의 판화’전은 일본 판화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는 자리다. 이번 전시는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소장 야마사키 히로키)와 공동으로 마련하는 전시로, 지금까지 한국에 거의 알려진 바 없던 1970년대의 일본판화를 선보인다. 1983년 설립 이후 판화를 전문으로 다룬 일본 마치다시립국제판화미술관의 다키자와 교지 학예원이 엄선한 작품들이다. 일본 활동시기의 이우환 판화작품도 출품된다.

일본의 1970년대 판화는 영화, 만화, 광고 등 시각영상이미지로 넘쳐나는 현대의 풍속을 적극적으로 담아냈다. 사진을 그대로 전사하는 것이 가능한 실크스크린 기법이 자리 잡아 감에 따라 판화 제작도 보다 수월해졌다.

에노쿠라 고지의 ‘하나의 얼룩’(1975년, 실크스크린)
목판과 실크스크린이라는 일본의 전통과 현대의 기법을 조합함으로써 새로운 판화의 시대를 보여주는 노다 데쓰야의 작품은 영상시대의 사진이미지와 같이 일상의 스냅장면을 담아냈다. 기무라 고스케와 기무라 히데키의 작품에서 보이는 투명한 상의 중첩과 반복, 마쓰모토 아키라와 하기와라 사쿠미의 작품에서 순차적인 이미지의 반복 속에 망점과 컷으로 해체된 영상이미지는 현대사회에서 브라운관을 통해 보는 영상이 가진 다양한 속성을 드러낸다. 또 사이토 사토시는 사진 이미지 중첩과 그것을 다시 찍어낸 판화로써 상(image)과의 미묘한 긴장을 섬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1970년대 일본 미술에서는 예술을 물질과 그 관계에 대한 사유로 풀어내는 실험적인 흐름이 있었다. 판화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판과 종이의 관계성에 대한 고찰이 있었다. 다카마쓰 지로의 공간 속 사물과 요시다 가쓰로의 겹친 사진 이미지는 각각 화면 안에서 원근법 원리에 따른 물체의 배치와 공간의 깊이에 대해 낯선 질문을 던짐으로써 판화의 요소로서 이미지를 대하는 우리 인식의 타성을 일깨운다. 이우환의 작품에서는 화면의 잉크와 종이가 이루는 여백과 긴장의 미를 엿볼 수 있다.

이치하라 아리노리의 ‘K’(1980년, 금속요판)
에노쿠라 고지와 이다 쇼이치의 작품은 제작과정의 물리적 자취를 노출시켰다. 가와구치 다쓰오의 작품은 구체적인 질료로서 대상과 화면 간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하여 더 극명한 만남의 세계로 이끈다. 가노 미쓰오와 이치하라 아리노리의 작품은 판의 요철이나 잉크가 그대로 흔적을 남긴 화면을 통해 묘한 정서를 자아내는 데에 이른다. 한국 단색화를 연상시킨다.

이번 전시에서는 1970년대 흐름의 맥락을 지닌 1980∼90년도 작품과 우키요에 복각화 20여점도 출품된다. 다키자와 교지 학예원의 강연과 우키요에 목판화 체험프로그램도 마련된다. (031)481-7014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