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원가 뻥튀기에 묻지마 감리… 관급공사 '검은 공생'

[밑 빠진 관급공사] 작년 불공정조달 신고 213건 달해/ 검사 기관, 직접 현장 조사 안하고 건설사 공표가격만 보고 원가산정/ 업체·감리기관 유착관계도 수두룩 ‘혈세 먹는 하마’로 불리는 관급공사는 시작 단계인 발주 과정부터 완공 후 감리까지 허점투성이다.

정부가 그동안 숱하게 조달비리 근절책을 내놨지만 관급자재를 납품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가격 부풀리기’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관급자재의 원가를 산정하는 원가 조사전문기관이나 조달청은 현장에서 직접 조사한 ‘거래실례가격’ 대신 업체의 공표가격을 활용하는 간접조사 방식을 택해 물의를 빚는다. 일부 업체는 시험 인증서를 조작해 납품하다 경찰에 덜미를 잡히고, 건설업체와 감리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관계를 맺고 있다.

◆관급자재 원가 부풀리기

공공조달납품과정에서 불법과 비리가 끊이지 않아 조달청이 골치를 앓고 있다. 이 기관의 올해 공공구매력은 무려 110조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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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청은 최근 계약규격과 다른 제품을 납품하거나 규격방식을 변경하는 수법으로 부당이득을 챙긴 3개 업체를 적발해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지난달에는 다수공급자계약(MAS)과정에서 가격을 부풀린 혐의로 토목용 보강재 계약업체 48곳에 대해 긴급 사전거래 정지 조치를 취했다. MAS는 조달청이 3개 이상 기업과 단가계약을 체결하고 공공기관이 별도의 계약체결 없이 ‘나라장터’ 쇼핑몰을 통해 쉽게 구매토록 하는 제도다. 토목용 보강재의 조달 단가가 시중 가격보다 비싸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현장실사를 통해 의혹을 확인했던 것이다.

공정위는 이 사건을 조달청에서 넘겨받아 현재 담합 혐의로 조사 중이다.

이 밖에도 2015년 조달청에 접수된 불공정 조달 행위 신고접수 건수만 213건에 달한다. 특히 불공정조달 행위 조사전담팀이 설치된 후에는 월평균 신고건수가 10.4건에서 21.3건으로 급증했을 정도다.

2014∼2015년 조달청 내부 감사자료에 따르면 2개 지방청 소속의 직원들은 현장에서 직접 조사한 ‘거래실례가격’을 쓰지 않은 채 한국물가정보 등에서 만든 물가지 가격을 사용했다가 주의를 받았다. 원가 전문조사기관인 한국물가정보는 작년 말 기획재정부 감사에서 거래실례가격이 아니라 해당 제품의 생산자가 전해준 공표가격을 활용한 간접조사 방식이 드러나 물의를 빚은 바 있다. 결국 업체의 입김이 들어간 원가정보로 정부 조달이 이뤄진 셈이다.

공무원의 조달업무 전문성도 도마에 오른다. 일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은 새롭게 기획·입안·설계 등을 거쳐 공급해야 할 공사·용역의 내용이 확정되면 적정가격 산정 능력이 떨어져 되레 건설사에 협력을 요구하는 일도 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지난해 9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도 용인 교량상판 붕괴사고는 부실 자재와 시공 때문으로 드러났다.
자료사진
◆감리 ‘부실’… 국민 안전 ‘비상’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작년 5월 지하철 9호선 공사와 김포도시철도 등 전국 14개 대형 공사현장에 중국산 품질불량 복공판(임시도로덮개)을 납품한 업자와 제품 시험성적서를 위조해준 품질 검사기관 직원들을 무더기로 적발했다.

이 사건을 통해 관급자재에 대한 시험검사기관과 업체의 유착고리, 허술한 관급공사 감리 실태가 드러났다. 전국에 시험성적서를 발급해주는 검사기관은 150여개가 난립해 있으며 1회 시험검사비가 100만원을 웃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품질검사를 의뢰하는 업체와 검사기관이 자연스럽게 ‘갑을’ 관계를 형성한다. 감리도 마찬가지다. 납품 후 공사현장의 복공판에 대해서 감리단에서 직접 채취한 시료로 품질검사를 의뢰해야 하지만 이를 번번이 무시했다.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 관계자는 “공급자에게 시험성적서 정도만 요구하는 형식적 점검 일색이었다”면서 “실질적으로 공장을 검수하고 감리할 수 있도록 관리 감독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감리제도는 감리업자가 공사발주자(공공)를 대신해 공사가 설계대로 이뤄지는지 감독하는 제도이다. 1986년 독립기념관 화제를 계기로 도입됐다. 감리원은 건설공사에서 소비자를 위한 유일한 전문 감시자이다. 그러나 그간 민간 건축주에게 감리책임을 부여해 형식적이고 엉터리 감리의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부동산국책사업팀 최승섭 부장은 “이윤 추구가 최우선인 건축주가 감리인과 계약을 체결하고 비용을 지불하다 보니 제대로 된 감리가 불가능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권익위원회는 시험성적서 위·변조를 막기 위해 현재 ‘시험기관→납품업체→발주처’ 3단계로 이뤄지고 있는 시험성적서 제출 절차를 시험기관이 직접 발주처에 제출하도록 간소화할 것을 최근 제안하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해 3월 공공건설 공사비 산정 때 실제 시장가격을 반영하는 표준시장단가제도를 도입했다. 저가입찰 우려가 큰 기존의 실적공사비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기존의 실적공사비 제도는 계약단가에 물가보정치만을 계산해 적용했지만 이 제도는 계약단가와 입찰단가, 시공단가를 모두 수집해 반영한다. 관급공사 시공비용을 현실화해서 커진 파이를 하도급 업체들이 나누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10개월 정도 지났지만 건설업계는 시큰둥한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 제도의 효과를)건설 현장에서 체감하기 힘들었다”면서 “적용대상 항목들이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이천종·안용성·이현미·이동수 기자 sky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