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와의 진실공방'… 코너 몰린 이완구

‘성 리스트’ 연루 이완구 전 총리 1심서 유죄/"금품수수 대화 자연스러워… 성완종 녹취록 신빙성 있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연루됐던 정치인 가운데 처음으로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29일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지난해 4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숨진 지 9개월여 만이다.

재판부는 ‘성완종 녹취록은 신빙성이 있다’는 결론도 함께 내놨다. 이에 따라 이 전 총리 외에도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정치인들의 재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성완종 리스트' 의혹과 연루돼 기소된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1심 유죄를 선고 받은뒤 법정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들으며 굳은표정을 짓고 있다.
이제원기자
◆재판부 “성완종 녹취록 신빙성 인정”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성 전 회장과 경향신문 기자 간의 대화를 담은 ‘성완종 녹취록’에 신빙성이 있는지 여부였다.

재판부는 “녹취과정에서 거짓이 들어갈 여지가 거의 없다”며 신빙성을 인정했다. 또 “진술 내용의 신빙성을 담보할 구체적 외부 정황도 있다”고 설명했다.

녹취록은 ‘사망한 사람의 증언’이란 점에서 논란이 됐다. 형사소송법상 증거는 ‘법정에서 이뤄진 진술’로 국한되지만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만들어진 진술에 한해 사망자의 진술도 증거로 인정하고 있다. 앞서 변호인 측은 “성 전 회장이 이 전 총리에 대한 배신과 분노의 감정으로 모함하고자 허위 진술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기자로부터 정권 창출 과정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설명해달란 질문을 받고 금품 공여 사례를 거론한 문답 경위가 자연스럽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다른 쟁점이었던 성 전 회장의 고속도로 통행기록도 모두 증거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성 전 회장의 일정표, 비서진 사이의 카카오톡 대화방 내용, 차량의 고속도로 통행기록 등을 종합하면 성 전 회장은 2013년 4월4일 오후 충남 부여 선거사무소에서 이 전 총리와 면담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 전 총리는 재판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재판부의 판단에 대해 유감”이라며 “항소심에서 진실을 밝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지난해 4월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돈을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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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리스트’ 다른 정치인에도 영향?

법원이 이 전 총리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함에 따라 리스트 속 정치인들에게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홍준표 경남지사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한 재판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전 총리의 재판에서 증거력이 폭넓게 인정된 만큼 홍 지사의 재판에서도 비슷한 잣대가 적용될 수 있지 않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증거력 인정 여부가 재판의 성패를 가른 이 전 총리의 재판과 달리 홍 지사는 금품 공여자 간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어 유사성을 섣불리 짐작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 지사는 “대선 무렵 친박 자금 수사 회피를 위해 나를 팻감으로 사용한 이 사건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완종 리스트 속 정치인들은 지난해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의 사실상 해체로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전망이다. 특수팀은 지난해 4월부터 81일간 140명을 조사하고 33명을 압수수색했지만 리스트에 거론된 친박 실세에 대해서는 ‘구체적 증거가 없다’며 계좌추적조차 하지 않았다.

허태열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 대해서도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으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리스트에는 없지만 수상 대상이 된 국민의당 김한길 의원과 새누리당 이인제 의원은 검찰의 거듭된 소환에 불응하고 있다.

정선형·김건호 기자 linea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