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우리가 사는 세상] 대한민국을 다시 세우는 힘… 가족이 희망이다

쓰러져도 넘어져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
‘64.1%’.

2014년 기준으로 가족과 밥상에 둘러앉아 저녁밥을 먹는다고 밝힌 한국인의 비율이다. 바꿔 말하면 국민 10명 중 4명 정도는 가족과 저녁을 함께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이 비율은 관련 조사가 시작된 2005년 76.1%에서 2010년 67.7%, 2014년 64.1%로 줄곧 낮아지는 추세다. 먹고살기 바빠 가족과 얼굴을 맞대고 숟가락조차 들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이는 핵가족화, 1인 가구 증가 등에 따른 가족 형태 변화로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이 해체된 것과도 연관이 깊다. 그래도 가족은 여전히 가장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다. 세계일보는 창간 27주년을 맞아 가족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한 사례를 통해 가족의 의미와 중요성을 짚어 봤다.

◆“가족이 큰 힘이 됐어요”


추효선(26·여)씨는 대학 신입생 시절인 2009년 12월 원인 불명의 희귀 난치병인 궤양성 대장염에 걸렸다. 추씨는 “하루 스무 번 넘도록 피가 섞인 설사를 하면 아프다는 말조차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며 고통스러웠던 당시를 회고했다. 병원에서 2개월간 입원치료를 받는 사이 몸무게는 15㎏이나 줄었다.

그런 추씨를 일으켜 세운 건 가족이었다. 치과의사인 어머니는 퇴근하면 병원으로 달려와 병 수발을 하고 병원 바닥 보호자 간이침대에서 잠을 청했다. 언니는 답답해하는 추씨를 부축하고 나가 바깥공기를 쐴 수 있게 해줬다. 해외에서 일하는 아버지는 매일 전화로 안부를 물었다.

추씨는 “아프고 나서야 가족의 가치와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오는 3월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추씨는 가정의학을 전공해 희귀질환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게 꿈이라고 한다.

경기 여주에서 은아목장을 운영하며 귀농 성공사례로 꼽히는 조옥향(63·여)씨 가족도 큰 고비를 넘겼다. 1983년 가족과 함께 귀농한 지 27년 만이었다. 2010년 10월 경북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이 조씨 목장과 불과 2.5㎞ 떨어진 한우농가까지 휩쓴 것이다. 구제역 발생 농장을 포함해 반경 3㎞ 이내 농가는 이동이 제한되는 조치에 따라 사료를 실은 차가 목장에 들어오지 못해 젖소 70마리가 아사 직전까지 내몰렸다. 이에 온 가족이 팔을 걷어붙였다. 방역 당국이 지정해 준 장소에서 사료와 풀을 축사까지 3개월간 실어 날랐다. 조씨는 “당시 여주의 축산 농가 200여가구 대부분이 가축을 땅에 묻었지만 우리는 단 한 마리도 묻지 않았다”며 “가족이 똘똘 뭉쳐 극복했다”고 말했다.

자폐성 장애 2급인 김예은(17)양은 어머니 최인혜(60)씨의 헌신적인 지원으로 가수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절대음감’이라는 김양은 어머니가 매니저를 자처한 덕분에 각종 가요제에서 상을 거머쥐고 있다.

김양의 아버지는 뇌수종과 싸우다 7년 전 세상을 떠났다. 망연자실한 최씨는 극심한 무력감에 휩싸였다. 한 달간 집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런 최씨를 깨운 건 단 하나 혈육인 김양이었다. 최씨는 “어느 날 예은이가 말라 비틀어진 사과를 힘겹게 깎더니 굶고 있는 내게 먹어 보라고 권하더라”며 “극단적인 생각도 했었는데 예은이가 ‘엄마, 배고파’ 하며 쳐다보길래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털어놨다. 최씨는 “예은이 덕분에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가족은 든든한 버팀목… ‘가족시간’ 절실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끈끈한 정은 여전히 든든한 버팀목이라며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강대 나은영 교수(커뮤니케이션학부)는 “가족의 위기는 우리 사회의 문화 풍토가 경쟁적으로 변하고 모든 세대가 경쟁에 내몰리는 것과 관련해 생각해봐야 한다”며 “경쟁적인 문화 속에서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이는 가족 간 소통의 부재와 오해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홍승아 연구위원도 “장시간 근로 문화와 아이들의 입시 문화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가족 간 소통 부재의 문제는 해결되기 힘들다”며 “가족 구성원들이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가족시간’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문제를 개인의 사정 탓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많다.

나 교수는 “여성가족부가 진행 중인 ‘가족 사랑의 날’(매주 수요일) 캠페인처럼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가족들이 집에 일찍 모여 얼굴을 바라보고 대화할 수 있는 제도를 지속적으로 발굴해야 한다”며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박진영·김라윤·하상윤 기자 jy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