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 만에… 일제 징용 희생자 영혼 달래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일본 야마구치서 공동위령제 “다음 생은 징용 없는 세상에 태어나 보통사람처럼 천수를 누리소서….”

지난달 30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長生)탄광 희생자 추모광장.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 염불과 태평소, 징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범패 소리는 차가운 겨울바람을 가르며 애잔하면서도 느리게, 때론 빠르게 진행됐다. 장단에 맞춰 불교의 작법무가 펼쳐졌다. 두 비구니 스님이 청동악기인 바라를 부딪치며 강렬한 춤사위를 보일 때는 장중함이 느껴졌고, 오색의 비로관을 쓰고 하얀 장삼으로 허공을 휘감을 때는 명치끝이 아련했다. 범패승들이 천도재를 얼마나 곡진하게 드리는지 한 많은 영혼들이 위로받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소속 스님들과 조세이탄광 희생자 한국인 유족, 일본 시민 모임 회원들이 지난달 30일 일본 우베시 수몰사고 지점 해안가에서 당시 조세이탄광 환기구였던 피아를 바라보며 고혼들을 위로하는 염불과 헌화를 하고 있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회장 자승 스님)와 조세이탄광 희생자 대한민국유족회, 일본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은 이날 공동으로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위령제’를 거행했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1942년 2월 3일 오전 9~10시쯤. 해저탄광인 조세이탄광의 갱도가 붕괴되면서 탄광 안에서 작업하던 인부 183명이 사망했다. 전쟁물자 생산에 급했던 일제와 채탄작업에 광분한 탄광회사가 안전수칙을 무시해 빚어낸 ‘인재’였다.

희생자 가운데 136명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된 조선인 징용자들이었다. 일본인 사망자는 47명. 당시 바다 위로 돌출된 환기구 ‘피아’에서는 거대한 물기둥이 솟구쳤고, 마을은 아비규환이 됐는데도, 이 사건은 탄광회사의 도산과 일본 정부의 수수방관으로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채 역사 속에 묻혔다.

그로부터 34년 만인 1976년 우베여고 역사교사 야마구치 다케노부(山口武信)가 이 사고를 파헤친 논문을 발표하면서 조선인 희생자의 존재가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1991년 일본의 양심인사들 사이에서 ‘장생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 결성돼 수몰사고의 전모를 일본인들에게 알리는 노력이 진행됐다. 추모광장도 회원들의 성금으로 조성됐다.

종단협의회는 지난해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한·중·일 불교우호대회에 참석했다가 서장은 히로시마 총영사에게서 이 사실을 전해 듣고 사무처장 각우 스님 등을 보내 현지답사를 마친 뒤, 이날 사고 날짜에 즈음해 비참하게 숨져간 고혼들을 위한 위령제를 지내게 됐다. 
천태종 총무원장 춘광 스님이 위령제에서 축원문을 낭독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서장은 총영사, 이노우에 요코 대표, 김형수 회장, 자승 스님,(빈자리 건너) 진각종 통리원장 회정 정사.

“앙고 시방삼세 제망중중 무진삼보 자존 불사자비 허수낭감….”

이날 종단협 부회장이자 천태종 총무원장 춘광 스님의 축원문에 맞춰 한국에서 간 스님들과 한국인 유가족, 일본 시민단체 회원 등 200여 명은 고혼들의 극락왕생을 빌고 또 빌었다.

위령제에서 김형수 유족회 회장과 이노우에 요코 ‘새기는 모임’ 공동대표가 각각 모임을 대표해 인사했고,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과 서장은 총영사가 각각 추모사를 했다. 양현 유족회 부회장은 발원문을 낭독했다.

추모사에서 자승 스님은 “양심 있는 우베시민들의 노력이 아니었더라면 당시 참사는 그 어떤 의미도 남기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증발해 버렸을 것”이라며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말했고, 서 총영사는 “이번 뜻깊은 위령제를 통해 부처님의 원력으로 억울하게 돌아가신 영혼들이 안식을 거둘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참가자들은 추모광장에서 500m가량 떨어진 해안가 사고 지점을 방문해 영령들을 위로하며 염불과 헌화를 했다. 바다에는 조세이탄광 환기구로 사용됐던 콘크리트 기둥 두 개가 세월의 무게를 버티며 그날의 참상을 묵묵히 말해주고 있다. 얼마나 많은 세월이 더 흘러야 희생자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서 나올 수 있을까.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저희들이 왔습니다.” 유족들의 절규가 바닷가에 맴돌았다.

우베시(일본)=글·사진 정성수 문화전문기자 tol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