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태기자의와인홀릭] 기사의 눈물 ‘에르미타주’

학창시절 세계사 시간에 십자군 전쟁에 대해 공부한 기억이 나시는지요.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 사이에 서유럽 그리스도교도들이 이슬람교도들이 관할하던 성지 팔레스티나와 성도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8차례에 걸쳐 감행한 전쟁을 말합니다. 당시 전쟁에 나선 기사들은 가슴과 어깨에 십자가 문양을 달았기에 십자군이라고 불렀답니다.

십자군 원정이 한창이던 1235년 기사 가스파르 드 스테랑베르(Gaspard de Sterimberg)는 전쟁에서 부상한 몸을 이끌고 안식처를 찾아 나선 끝에 프랑스 북부 론에 은둔하게 됩니다. 그는 언덕 꼭대기에 작은 교회(Chapelle)를 짓고 살상을 참회하며 정성으로 포도밭을 일궜습니다. 포도 품종은 십자군 원정길에서 획득한 시라(Syrah)입니다.

그가 일군 포도밭은 북부 론 최고의 와인을 빚는 산지가 되는데 ‘에르미타주(Hermitage)’라고 부르게 됩니다. 바로 ‘은자의 처소’라는 뜻입니다. 북부 론 와인 생산자 중 폴 자볼레 애네(Paul Jaboulet Aine)가 생산하는 에르미타주 ‘라 샤펠(La Chapelle)’은 바로 이 교회의 이름을 따서 지은 와인입니다. 1961년산 라 샤펠(사진)은 역사상 최고의 와인으로 평가 받으며 지금도 병당 4000만원을 호가한다는군요. 폴 자볼레는 이 기사의 이름을 딴 화이트 와인도 만드는데 바로 슈발리에 드 스테랑베르 에르미타주 블랑(Chevalier de Sterimberg Hermitage Blanc)입니다.

북부 론 시라도 호주 쉬라즈(Shiraz)와 마찬가지로 야성적이면서 풍부한 과일향이 매력적인 품종입니다. 문제는 가격이 수십만원대라는 점입니다. 아무리 맛난 와인도 비싸면 그림의 떡이지요.

방법이 하나 있답니다. ‘크로제 에르미타주(Crozes Hermitage)’ 와인을 드세요. 에르미타주 남쪽에 넓게 퍼진 와인 산지인데 똑같이 시라 100% 와인입니다. 물론 에르미타주보다 다소 거칠지만 맛과 향에서 에르미타주 와인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답니다. 더구나 3만∼5만원이면 구입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겠죠.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