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2-07 11:48:41
기사수정 2016-02-08 10:07:53
지난해 11월 결혼 후 첫 명절을 맞는 김모(30·여)씨는 시가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말을 듣고 가족 호칭 관계도를 찾아보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결혼한 여자가 쓰는 시가 호칭 가운데 존칭이 유난히 많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내는 남편 동생을 도련님, 서방님, 아가씨라고 불러야 하는데 남편은 아내의 동생에게 처남, 처제라고 부른다”며 “양성평등 시대에 맞게 호칭도 바뀔 필요가 있지 않냐”고 반문했다.
결혼 6개월차인 이모(28·여)씨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씨는 “나는 시부모에게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하는데 남편은 보통 장인어른, 장모님이라고 한다”며 “초등학교 저학년인 남편의 사촌 동생을 아가씨라고 부르며 꼬박꼬박 존댓말 하는 것도 너무 어렵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가족 호칭 가운데 성차별적인 요소가 내포된 것들이 적지 않다. 아내가 남편의 여동생에게 쓰는 ‘아가씨’가 대표적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가정학과 교수는 “지금 관습적으로 쓰는 호칭들은 17세기 중엽 이후 부계 사회가 고착화하면서 만들어진 탓에 기본적으로 성차별적”이라며 “일례로 ‘아가씨’는 원래 하인이 미혼의 양반집 딸을 높여 부르던 말”이라고 꼬집었다.
‘시댁’과 ‘처가’도 성차별적인 표현이다. ‘시댁’은 시부모가 사는 집인 ‘시집’을 높여 이르는 말인 반면, ‘처가’는 아내의 본가를 뜻한다. 처가와 달리 시댁은 존칭에 해당하는 셈이다. 국립국어원도 2007년 발표한 한 보고서에서 시댁과 처가를 두고 “남편쪽은 ‘댁’이고 아내쪽은 ‘가’라는 차별의 대표적 문구”라고 지적한 바 있다. 처가를 높여 이르는 ‘처가댁’이란 말도 있지만 잘 쓰이지 않는다.
안상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평등사회연구센터장은 “아내는 시가 가족이나 친척들에게 ‘님’자를 붙이는 식으로 존칭하는 반면, 남편은 처가 손윗사람에 대해서도 손위로 생각하기 어렵게 호칭하는 경우가 많다”며 “남편이 쓰는 처가 호칭과 아내가 쓰는 시가 호칭이 동등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립국어원이 2011년 마련한 ‘표준언어예절’에 따르면 남편이 아내의 언니를 부르는 표준 호칭은 ‘처형’이지만 아내가 남편의 누나를 부르는 표준 호칭은 ‘형님’이다. 또 남편은 아내 여동생의 남편을 ‘동서’나 ‘○서방’으로 부를 수 있지만 아내의 경우에는 남편 여동생의 남편을 ‘서방님’이라고 부른다.
전문가들은 양성평등이 중요해진 사회 변화에 따라 가족 호칭도 바뀔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관계자는 “예전에 비해 가부장적인 가족 문화가 변하고 가족 간 결속이 많이 약해졌다”며 “이런 변화를 호칭에도 반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름에 ‘씨’를 붙여 부르는 게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안 센터장은 “의미를 곱씹어 보면 성차별적이란 사실을 알 수 있는데도 부지불식간에,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여성의 역할을 제한하는 ‘집사람’이나 ‘안사람’ 같은 성차별적인 용어 사용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언어 예절이 어느 한 세대만의 규범이 아니기 때문에 남녀 간 균형이 맞지 않고 세대 간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진영·남혜정 기자 jyp@segye.com
자료 : 국립국어원 ‘표준언어예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