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육아에 갱년기까지… 할마는 아프다

 


직장에 다니는 딸의 아이를 4년째 돌보는 60대 정 모씨는 가족들로부터 요즘 예민해졌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정 씨의 하루 생활 패턴은 모두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집 안에서 생활하다보니 외출도 쉽지 않고, 떼쓰는 손주를 달래 먹이고 재우고 씻기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아이고’라는 탄식이 나온다.

어쩌다 한 번 동창 모임에 나가면 ‘요즘 누가 손주를 봐주냐, 애 키우느라 얼굴이 많이 상했다’는 얘기를 듣기 일쑤다. 그러다보니 퇴근한 딸에게 ‘나는 모임 한 번 마음 편히 못 나간다’는 소리를 자주 하게 되는데, 딸은 미안해하면서도 서운해 하는 눈치다. 남편도 자신을 챙기지 않는다며 섭섭해 하는 통에 부부싸움도 잦아졌다. 내 건강 챙기기에도 바쁜 나이에 손자 키우느라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다 보니 ‘내 자식 키울 때도 없었던 육아스트레스가 이런 건가’ 싶기도 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매사 짜증스럽고 무기력해 50대에 지나친 갱년기가 다시 온 것은 아닌가 싶어 한없이 우울하다.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면서 손주 육아를 담당하는 조부모가 늘고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 중 절반이 ‘조부모가 손주를 돌봐주고 있다’고 답했고 황혼육아, 할마(할머니+엄마) 등의 신조어도 사회현상을 반영해주고 있다. 2~30년 만에 다시 찾아온 육아는 꽤 고되다. 50~60대 여성에게 아이를 안고, 씻기는 등 하루종일 챙기는 것은 체력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손주 육아 시 호소하는 피로, 관절통, 우울증, 불안 등은 폐경 이후 나타나는 갱년기증후군과 매우 유사하고,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날 수 있어 적극적인 관리와 치료가 필요하다.

폐경은 나이가 들며 나타나는 매우 자연스러운 생리적 과정이지만, 많은 중년여성이 인생의 봄날이 끝난 것 같다는 ‘상실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한 출발점으로 생각한다면 인생의 후반전도 충분히 활기차게 보낼 수 있다. 폐경을 맞은 중년여성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갱년기증후군’이다. 폐경기 여성의 약 75%가 안면홍조 등 혈관운동성 증상을 겪는데, 1~2년 정도가 일반적이나 간혹 10년 이상 증상이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요즘과 같이 기온이 낮은 겨울에는 얼굴이 붉어지고 머리에 땀이 나는 증상과 함께 손발이 얼음장처럼 차면서 다리, 엉덩이까지 시린 수족냉증이 동반될 수 있다. 쉽게 말해 상체는 더워서 답답한데, 하체는 차가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상열하한(上熱下寒)’ 또는 ‘음허화동(陰虛火動)’이라 표현한다. 우리 몸에는 불과 물의 두 가지 기운이 균형을 맞추는데, 나이가 들면서 ‘물’에 해당하는 기운이 더 많이 줄어들어 상대적으로 열이 나는 듯한 상태가 바로 갱년기 증상이다. 간혹 폐경 후에도 갱년기 증상 없이 건강한 여성을 볼 수 있는데, 평소 건강관리를 잘해서 인체의 균형이 깨지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폐경 이후에는 여성의 난소 기능 저하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정신적 요인 등 모든 생활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한의학에서도 단순히 호르몬 부족에 해당하는 신허(腎虛) 증상이 아니라, 화병과 같이 기(氣)가 울체(鬱滯: 막히거나 가득 참)되거나 심화(心火)가 조장되는 경우 등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하며 치료 목표를 정한다.

한약 치료는 기본적으로 전신적 관점에서 치료가 진행된다. 불과 물 중 부족한 것을 살핀 후, 이를 보충해주고자 자음(滋陰) 기능을 하는 한약을 사용한다. 만약 어딘가가 막혀 물이 제대로 순환을 못 하고 있다면 막힌 것을 뚫어주는 ‘소간해울(疏肝解鬱)’ 방법의 치료를 한다. 기운이 부족한 경우에는 기를 보충해주는 한약을 사용해 폐경 이후 면역력 강화와 노화 예방을 돕는다. 침 치료는 폐경뿐 아니라 유방암과 같은 다른 질환 때문에 발생하는 안면홍조에도 유효한 효과가 있다.

경희대학교한방병원 한방여성의학센터 황덕상 교수는 "침, 한약치료와 더불어 뜸이나 약침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갱년기 증상을 치료하고 중년여성의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며 "증상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기보다 적극적인 관리와 치료를 병행한다면 충분히 호전될 수 있으며, 특히 육아를 하고 있는 할머니들의 경우 가족들의 관심과 격려가 심리적인 안정을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Tip. 갱년기 증후군 자가 진단
다음 문항 중 한 가지가 일상생활에 크게 지장을 주거나, 심하지 않더라도 5개 이상 해당된다면 적극적인 관리와 치료가 필요하다.

1. 갑자기 얼굴이 달아오르고 땀이 난다.
2. 가슴이 두근거리고 조여드는 느낌이 난다.
3. 잠을 설친다.
4. 의욕이 없고 우울하다.
5. 신경이 날카롭고 쉽게 화낸다.
6. 초조하고 불안하다.
7. 심신이 쉽게 피로하다.
8. 소변을 자주 보거나 요실금 증상이 있다.
9. 부부 관계에 의욕이 없고, 통증이 있다.
10. 관절통이 있으며, 근육이 쑤시고 아프다.

헬스팀 이경호 기자 kjeans2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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