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세상에 새겨진… 뜨거웠던 미완의 청춘

이준익 감독 신작 ‘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참회록’ 전문)  

<< 사진 = 영화 ‘동주’는 이름도, 언어도, 꿈도 허락되지 않았던 어둠의 시대 속에서도 시인의 꿈을 품고 살다 간 윤동주의 청년 시절을 화려한 기교나 과장 없이 정직하게 그리고 있다.>>

스물여덟 나이에 청춘을 마감한 아름다운 청년 윤동주, 그가 남긴 시가 75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가슴 한 구석 깊은 곳을 지키며 때때로 우리에게 울림을 전한다.  

‘사도’ ‘소원’ ‘왕의 남자’ 등 진정성이 돋보이는 연출로 매번 감동을 안겨준 거장 이준익 감독이 이번에는 이름도, 언어도, 꿈조차도 어느 것 하나 허락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아래, 시대의 어둠 속에서도 찬란히 빛을 발하던 청춘들에게 눈을 돌렸다.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시인이지만 정작 살아 생전 시인으로서의 삶을 누려보지 못했던 청년 윤동주(강하늘)와 그의 오랜 벗 송몽규(박정민) 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새영화 ‘동주’다.

이 감독은 “모두의 시인 윤동주, 그의 시가 누구와 같이 어떠한 시대를 이겨 내고 이 땅에 남았는지, 그 과정을 영화로 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하나로 기획했다”며 “미완의 청춘으로 남은 스물여덟 보통 청년 동주와 몽규의 이야기를 통해 나이 많은 이들에겐 식지 않는 청춘을, 젊은이들에겐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갔는지를 일깨워 삶에 큰 가치를 부여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영화는 흑백 영상으로 만들어져 오히려 보는 매력을 배가한다. 흑백은 컬러보다 배우에게만 오롯이 집중시켜 캐릭터의 심리나 상황에 더욱 주목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영화는 시대를 아파하는 시인 윤동주와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감정을 드라마틱하게 담아낸다. 흑백사진으로만 보아오던 두 사람의 캐릭터가 보다 명징하게 드러난다. 카메라에 과도한 움직임을 주지 않고 촛불이나 호롱불 같은 빛만으로도 공간의 흔들림을 일으켜, 무엇인가 생각할 수 있는 정서적 여백까지 고려했다. 스크린 밖으로 나온 두 청년의 감정이 객석까지 그대로 닿아 무척 깊은 인상을 남긴다.

흑백 촬영은 밝기가 같거나 비슷할 경우 피사체의 구분이 모호해지기 때문에 빛의 강약, 공간의 배치, 인물의 움직임 등을 매번 꼼꼼히 챙겨 찍어야 한다. 하지만 이 감독은 “청춘을 그 누구보다 뜨겁게 살다간 이 분들의 영혼을 흑백화면에 정중히 모시고 싶어서”, 그만의 뚝심으로 이 방법을 고집했다.

윤동주의 시가 영화와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들려주는’ 방식을 택한 것도 강점이다. 윤 시인의 작품들은 영화 속 ‘동주’의 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들과 맞물린다. 동주가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 몽규와 함께 연희전문학교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새로운 길’은 그들의 앞날을 예견케 하며, 동주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여진과 나란히 밤길을 걸을 때는 ‘별 헤는 밤’으로 두 사람 사이의 풋풋한 감성에 윤기를 더한다. 일본 유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창씨개명을 한 뒤 읊는 ‘참회록’의 구절에는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던 청년 동주의 고뇌와 시대적인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후쿠오카의 형무소에서 점점 피폐해지는 동주의 모습을 배경으로 낭송되는 ‘서시’는 그의 비극을 극대화하며 고통을 참담하게 전한다.

각본을 맡은 신연식 감독의 감각도 빛난다. 영화 ‘프랑스 영화처럼’, ‘조류인간’, ‘배우는 배우다’ 등 그간 문학성이 묻어나는 작품들을 연출한 그는 삶의 전환기마다 작품세계의 변화를 보였던 윤 시인의 특성을 읽어내고 영화 흐름의 구체적인 방향을 잡아냈다.

창씨개명을 요구하는 상황 속에서 시를 계속 쓰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고민하는 동주의 모습과 일본 경찰의 철통 같은 감시로 뼈저린 좌절을 맛보면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는 몽규의 모습은 현재 우리네 청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시대나 청춘은 있었고, 청춘은 언제나 시대를 아파한다. 처한 현실 앞에서 저항하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뜨겁게 청춘을 불살랐던 두 사람의 이야기는 2016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