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스포츠] “올 시즌 많이 뛰고 우승에 한몫해 뿌듯”

만년 식스맨서 주전 도약… 우리은행 우승 ‘숨은 공신’ 이은혜 여자프로농구(WKBL) 춘천 우리은행은 지난 7일 홈인 춘천 호반체육관에서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35경기를 치르는 여자농구에서 28경기(24승4패) 만의 우승은 단일리그로 정착된 2007∼08시즌 이후 최단 기록이다. 2012∼13시즌 지휘봉을 잡은 이래 정규리그에서 내리 4연패를 달성한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은 “모든 선수가 다 잘했다”고 평가하면서도 “굳이 한 사람을 꼽자면 이은혜”라고 마음속 최우수선수(MVP)를 선정했다.

2007년 데뷔한 이은혜는 식스맨 생활을 접고 올 시즌 처음 주전으로 도약했다.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은 이은혜를 마음속의 올 시즌 정규리그 우승의 MVP라고 꼽았다.
WKBL 제공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6순위로 우리은행 유니폼을 입은 이은혜는 만년 식스맨(후보선수)이었다. 168㎝로 농구선수로는 작은 키에 선배에게 치이고 후배에게 밀리며 좀처럼 기회를 잡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이은혜는 새벽 훈련을 한 번도 빠지지 않는 등 꾸준히 노력했다. 비시즌 혹독한 체력훈련 테스트에서도 번번이 일등을 꿰차며 구슬땀을 흘렸다.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올 시즌 이은혜는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위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주전 가드 이승아가 발목 부상에서 회복이 더디자 백업이던 이은혜를 선발로 내세웠다. ‘준비된 가드’ 이은혜는 자신에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전 경기를 뛰면서 팀 우승에 숨은 공신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은혜는 10일 통화에서 “같은 우승이더라도 여느 해보다 뜻깊다. 지난 세 시즌 통합우승을 했지만 경기에 뛴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도움이 못 됐다”면서 “올 시즌에는 많이 뛰어 우승에 일조한 것 같아 뿌듯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은혜는 지난 시즌까지 경기당 10분 안팎을 뛰었다. 팀이 지난 세 시즌 통합우승을 하는 동안 이은혜가 코트에 선 시간은 경기당 평균 11분5초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은혜는 올 시즌 주전 가드로 도약하면서 평균 27분19초를 뛰고 있다. 출전 시간이 늘면서 득점과 어시스트, 스틸 등 모든 면에서 기량이 만개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스틸이다. 지난 시즌 총 16개 스틸을 기록한 그는 올 시즌 47개 공을 훔치며 강아정(청주 KB), 김단비(인천 신한은행)에 이어 리그 3위를 달리고 있다. 이 추세라면 데뷔 첫 타이틀을 노려볼 수도 있다. 이은혜는 “감독님이 상대가 속공을 할 때 가만두지 말고 파울을 해서라도 끊거나 뒤에서 뺏으라고 지시한다. 발이 빠른 장점을 활용해 뺏다 보니 재미가 붙었다”며 “처음에는 스틸왕 욕심도 났는데 지금은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 타이틀은 열심히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5∼16시즌 여자프로농구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한 우리은행 선수단이 지난 7일 춘천 호반체육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춘천=연합뉴스
득점도 꽃을 피웠다. 이은혜 앞에는 항상 ‘체력은 좋은데 슛이 아쉬운 선수’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올 시즌 그는 슛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시즌 도중 자세를 바꾸는 모험을 강행했다. 지난 시즌 평균 2.5점을 넣은 이은혜는 올 시즌 경기당 3.6점을 성공시켰다. 14개의 3점슛은 데뷔 이래 한 시즌 최다 기록이다. 두 손을 쓰는 투핸드 슛에서 한 손만 쓰는 원핸드 슛으로 방식으로 교체하면서 확 달라졌다. 그는 “1라운드 마치고 감독님이 이래도 저래도 안 들어가면 폼을 한 번 바꿔 보자고 했다. 그때는 솔직히 더 안 들어갈까봐 바꾸고 싶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잘됐다”며 “폼을 바꾼 뒤 처음에는 공이 림에 닿지도 않았다. 그래서 슛 연습을 평소보다 훨씬 많이 하다 보니 조금 더 잘 들어가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이은혜는 프로에 와서 별다른 활약이 없었기 때문에 태극마크와는 인연이 없다. 청소년 대표로는 뛰었지만 성인 대표팀으로는 한 번도 나서지 못했다. 한국 여자농구는 오는 6월 프랑스 낭트에서 리우올림픽 최종예선을 치른다. 이은혜는 “아직 대표팀에 갈 정도 실력은 못 된다”면서도 “세계적인 선수들과 겨루면 더욱 성장할 것 같다. 기회가 되면 꼭 대표팀에 가고 싶다”고 열망을 드러냈다.

우리은행은 정규리그에서는 독주 체제를 구축하며 일찍 축배를 들었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 챔피언 결정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은혜는 “부상 없이 남은 경기 잘 치르고 챔피언 결정전에서 꼭 우승해 통합 4연패를 이루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한편 10일 인천에서 열린 경기에서는 부천 KEB하나은행이 19득점 12리바운드를 기록한 첼시 리의 활약에 힘입어 인천 신한은행을 66-53으로 물리치고 2위 자리를 굳게 지켰다.

최형창 기자 calli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