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헌의 만史설문] 처참하고 흐트러진 현장… ‘아수라장’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어

〈96〉 아수라장과 난장판 설 연휴 인천공항의 붐비는 모습을 어떤 언론은 ‘아수라장’이라고 썼다. 얼마 전엔 대부분 언론이 ‘유례없는 폭설과 한파로 제주공항이 아수라장이 됐다’고 했다. 난장판이라는 표현도 있었다. 사진 영상 등 보도 내용을 보니 그런 표현 나올 만했다. 

아수라장을 이룬 제주공항. 그런데 阿修羅場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연합뉴스
그런데 아수라장이 뭐지? 한자 阿(언덕 아) 修(닦을 수) 羅(비단 라) 마당 장(場)의 阿修羅場, 문자 속 밝다 하는 이들도 ‘언덕에서 닦는 비단 마당’과 그 ‘아수라장’의 관계를 알아채기 쉽지 않을 듯하다. 이 말의 ‘출생의 비밀’ 때문일 터다.

‘아수라’는 고대의 인도 언어 산스크리트(Sanskrit)에서 출발해 아시아 대륙을 휘감고서 우리말에 편입된 낱말들 중 하나다. 얼굴 세 개에 팔이 여섯 개인 흉측한 모습에다 싸움을 좋아하는 인도의 신(神) 아수르(asur)가 말밑(어원)이다.

관노가면극. 한국의 대표적 난장인 강릉단오제의 간판이라 할 만한 연희(演?)다.
강릉시청 제공
산스크리트는 고대로부터 인도에서 활용된 고급 문어(文語)다. 범어(梵語)라고도 불렀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종교 철학 문학 학문 등의 용어로서 지식계급 사이에 사용되어 왔다. 불교 경전 역시 산스크리트로 적혀 퍼졌다. 메소포타미아 등 인도의 서쪽 문명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신화의 몇 대목이 이 장면에 끼어든다.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에는 비슈누신(神)의 공격을 받은 험악한 꼴의 아수라들의 시체가 산을 이룬 모습이 나온다. 그리하여 피비린내 나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이 처참하게 흐트러진 현장을 이르는 말이 됐다.

전쟁터와도 같은 비참한 상황을 이르는 상투적인 언어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이다. 말은 그 말에 어울리는(맞는) 상황에 써야 한다. 그러자면, 이렇게 먼저 그 뜻을 꼼꼼히 챙기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인도의 4000년 전 석재 인장. 산스크리트의 원형(原型)일 수도 있는 부호가 그림과 함께 새겨져 있다.
산스크리트는 한글이나 영어처럼 소리글 표음(表音)문자다. 산스크리트어(語)라고 부르는 이도 있으나, 산스크리트가 이미 ‘어떤 언어’라는 뜻을 가지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어색한 표현이다. 중국이 불교 등 인도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뜻글자 표의(表意)문자인 자기네 한자로 바꾸기 위해 비슷한 소리를 가진 글자를 골랐다. 소리로 번역하는 소위 음역(音譯)이다.

이 말을 우리 한국어의 한자어 발음으로 읽으니 ‘아수라’다. 거기에 시장이라고 할 때 쓰이는 장(場)자가 붙었다. 산스크리트는 고려시대에 몽고를 통해 들어온 밀교(密敎)풍 티베트 불교의 영향으로 우리 불교에도 그 흔적이 남았다. 당시는 몽고가 우리를 지배한 시기였다. 

화순 운주사 출토 범자(梵字) ‘옴아훔’과 ‘옴마니반메훔’명(銘) 기왓장.
세계일보 자료사진
천불천탑(千佛千塔)의 절 화순 운주사 옛터에서 출토된 기왓장의 범자 ‘옴아훔’과 ‘옴마니반메훔’으로 그런 역사를 살필 수 있다. 순천 송광사와 보성 대원사에도 비슷한 유물이 있다. 범자 진언(眞言)이라고도 한다.

주술적(呪術的) 의미를 보듬은 진언인 옴아훔의 ‘옴’은 몸, ‘아’는 말, ‘훔’은 마음이다. 형태 소리 말의 상징으로, 부처님의 표상이기도 하다. 자신과 주위를 정화하는 주문인 이 말은 서양 종교의 삼위일체(三位一體·trinity) 개념을 연상하게도 한다. ‘옴마니반메훔’은 깨달음의 마음 상태를 찰나적(刹那的)으로 표현한 말이다.

산스크리트 출신 어휘가 이런 ‘진리의 언어’나 아수라장과도 같은 특수한 상황을 이르는 말로 퍼진 것처럼, 야단법석이나 아비규환과도 같은 불교 관련 어휘가 우리 일상에 스민 경우도 여럿이다. 그 연원(淵源)이나 과정은 흡사할 것으로 본다. 범자(梵字) 또는 범어와 우리 말글과의 관계인 것이다.

아수라장을 바꿔쓸 만한 우리말을 찾기는 쉽지 않다. (생활)문화의 차이가 언어에 드러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선조가 그만큼 선량(善良)했다는 뜻일까? 곰곰 머리 굴려 봐도 난장판 뒤죽박죽 엉망진창 정도가 고작이다. 그나마 피가 튀고 뼈가 부서지는 등의 처참한 모양을 적는 낱말은 아니다.

난장(亂場)은 해산물을 파는 파시(波市)나 약재 중심 약령시(藥令市)처럼-5일장처럼 정기적으로 열리는 정규시장이 아닌-특수한 시장이다. 여러 목적으로 관청은 난장을 허락해준다. 그러면 ‘장사치’들이 난장을 튼다. 그 난장에 사람이 많이 모여 떠들썩하도록 만들기 위해 벌이는 놀이나 공연의 ‘판’이 난장판이다. 요즘 의미와 원래 의미 사이에는 이런 차이가 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제례의식인 강릉단오제는 그 (원래 의미의) 난장의 표본이라 하겠다. 신령스런 단오굿이 있고 가면극도 있어 능히 그 난장은 난장판을 이룬다. 축제 내내 강릉시와 주변의 주민들이 나름의 역할을 즐기며 참여하는 모양새는 ‘전통의 계승과 발전’이란 개념의 모델이 될 만하다. 관노가면극은 재미나면서, 요즘말로 섹시하기도 하다.

‘아수라장’과 ‘난장판’은 이렇게 흡사하면서 다르다. 이처럼 말은 숱한 요소(要素)와 요인(要因)들이 씨줄날줄로 짜여 이뤄진다. 역사의 산물일 터, 또 그 자체가 역사이기도 하다.



■사족(蛇足)

소리글자 산스크리트를 뜻글자인 문자(한자)로 옮기기 위해 한자문화권인 동북아시아에서는 ‘소리를 적는(고정하는)’ 방법인 반절법(反切法)을 고안했다. 이는 한자(중국어)의 발음을 규정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발전했다.

가령 동녘 동(東)자의 반절은 덕홍절(德紅切)인데, 덕의 ‘ㄷ’과 홍의 ‘옹’을 합친 것으로 ‘동’ 소리를 표시해 그 글자의 합(合)으로 소리를 읽어내도록 한 것이다. 절반씩으로 한 글자의 소리를 표시하는, 당시로는 혁신적인 장치였다. 좀 두꺼운 한자사전에는 대부분 글자마다 이 반절음 표기가 있다. 한자와 우리말에 산스크리트가 끼친 흔적 중 하나일 터다.

이를 보면, 문자 체계가 바로 소리로 인식되는 우리 훈민정음(한글)이 온 누리의 여러 언어나 소리를 나타내기에 얼마나 효과적인지 다시 실감하게 된다.

소리글 하나하나의 음절에는 뜻이 없다. 우리 말글 상당부분의 속뜻이 되어주는 산스크리트나 영어 같은 외래적인 요소들, 특히 우리와 함께 한 역사가 오래된 한자어는 우리 말글의 의미 부분을 붙들어 소리글의 부족함을 메우는 든든한 재산이다. 언어의 성품은 융합(融合)이면서 복합(複合)이다. 문화의 바탕인 것이다.


강상헌 언론인·우리글진흥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