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같이 평범한 대학생이 직무 관련 풍부한 경험을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제대로 쌓을 수 있을까요? 탈스펙 채용이라고는 하지만 스펙을 전혀 보지 않는 건 아닐텐데, 직무역량까지 갖추려니 되레 부담이 더 커졌습니다."
2013년을 기점으로 해 대기업과 공기업, 금융권을 중심으로 이력서에서 불필요한 스펙 기재란을 삭제하거나, 오디션과 같은 이색 채용 전형을 도입해 다양한 방식으로 역량을 평가하는 기업이 증가하는 등 '스펙 초월'이 채용의 주요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그럼에도 지난 2년 동안 구직자 스펙은 오히려 상승했다.
◆"'스펙 초월' 시행 2년, 구직자 스펙 오히려 높아져"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2013~2015년 자사 사이트에 등록된 이력서를 분석한 결과, 학점을 제외한 자격증·인턴·영어 등의 스펙이 2년 전보다 높아졌다.
먼저 직무 능력을 간접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자격증 보유자가 2013년 74.7%에서 지난해 81.5%로 6.8%p 증가했다. 보유개수는 모두 평균 2개로 동일한 수준이었다.
인턴 경험 보유자는 지난해 기준 21.8%로 2013년(18.4%)보다 3.4%p 증가했다. 직무 중심 채용이 강화되면서 업무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서류·면접 전형에서 나만의 스토리로 활용할 수 있는 인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이다.
토익 성적의 경우 보유자와 이들이 보유한 점수 모두 상승했다.
지난해 신입 구직자 중 토익 성적 보유자는 40%로 2년 전(38.2%)보다 1.8%p 증가했다. 동일 기간 동안 점수는 평균 728점에서 752점으로 24점 상승했다. 800점 이상 고득점자의 비율도 36.2%에서 42.3%로 6.1%p 많아졌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800~899점(30.6%) △700~799점(29.5%) △600~699점(16.8%) △900점 이상(11.7%) △500~599점(7.7%) △499점 이하(3.7%) 순이었다.
'토익 스피킹(TOEIC Speaking)' 점수 보유자도 3.3%p 증가했다. 신입사원 채용 시 어학성적을 반영하지 않는 기업이 늘고 있지만, 구직자들은 여전히 영어에 목을 메고 있는 것.
사람인 관계자는 "실질적인 직무 역량을 높이기 위해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인턴 경험을 쌓는 것은 좋지만, 막연히 점수가 높으면 더 좋다는 생각이나 이력서에 한 줄을 기재하기 위해 스펙을 취득하는 것은 취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단순 고스펙이 아닌 최적의 스펙을 위해서는 해당 기업과 채용 직무에서 요구하는 역량을 꼼꼼히 분석, 그에 맞는 스펙 쌓는데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일부 공기업의 채용전형이 지나친 스펙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교육 관련 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공기업 30곳 등을 대상으로 신규 채용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이들 기업 대부분이 학력 제한을 두고 있었으며 지나치게 많은 스펙을 요구하고 있었다.
채용 공고부터 대졸(예정)자를 기준으로 학력을 제한하는 공기업은 29개사 중 2개사 뿐이었다. 29개사 중 △지역난방공사 △중부발전 △서부발전 △동서발전 등 4개사만 채용공고와 입사지원서에 학력 기입란이 아예 없었다. 23개사는 입사지원서에 학력 기입란을 둬 실질적인 학력 제한을 하고는 곳은 23개사(79.3%)에 달했다.
◆직무와 별 관련 없는 '한국사 자격증'은 왜?
입사지원서상 스펙 요구도 지나치게 많았다. 자격증을 요구한 곳은 26개사(89.7%)였고 △어학 점수는 24개사(82.8%) △수상경력은 8개사(27.6%)가 각각 기재하도록 했다. 해외연수와 교환학생 경력을 쓰도록 한 공기업도 4개사(13.8%)나 됐다.
직무와 크게 연관이 없는 한국사를 사실상 22개사(75.9%)가 요구하고 있었다. 한국사 자격증을 요구하는 기업은 12개사, 별도의 한국사 시험을 치르는 기업이 10개사였다. 2개사는 자격증은 물론 별도 시험까지 요구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관계자는 "(이번 결과에서 보듯) 학력이나 연령을 초월한 열린 채용 방식은 매우 한정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지나친 스펙을 요구하는 것은 후진적인 채용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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