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2-15 14:18:48
기사수정 2016-02-15 14:18:48
北, 9·19 공동성명 등 일방 폐기하며 핵개발에 전력해와
정치권 중심 자위적 핵 억지력 확보 목소리 커져 '주목'
지난 1992년 2월19일 남북은 평양에서 제6차 고위급회담을 열어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정식 발효했다.
앞서 남북은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합의한 데 따라 1991년 12월26일부터 같은달 31일까지 판문점에서 3차례의 대표접촉을 가졌다.
접촉에서 북한은 남한의 비핵화 선언 촉구에 합의, 1991년 12월31일 남북은 비핵화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이후 양측 총리 서명을 거쳐 정식 발효된 것이다.
비핵화공동선언은 핵무기의 시험·생산·접수·보유·저장·배치·사용 금지,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핵 재처리시설 및 우라늄 농축시설 보유 금지, 쌍방 합의에 따른 남북핵통제위원회 사찰 실시 등 골자로 했다.
그러나 남북 간 비핵화공동선언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견인하지 못했다.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임시 핵 사찰 이후 추가 사찰을 요구하자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으나, 우려가 커지자 1994년 11월1일 핵 활동을 동결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북한은 지난 2002년 12월12일 8년여간 유지했던 핵 동결 조치의 해제를 선언했다. 이후 북한은 핵 능력 개발에 대한 야욕을 숨기지 않았다.
2005년 2월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북한은 같은해 9월 6자회담을 통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9·19 공동성명에 합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곧바로 이듬해인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어 2009년 5월 2차 핵실험을 이어갔다. 2차 핵실험에 앞서 북한은 같은해 1월 조평통 성명을 통해 '비핵화공동선언'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는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을, 2016년 1월에 4차 핵실험을 거듭 강행한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공동선언을 일방적으로 폐기한 이후 일각에서는 휴지조각이 된 남북 간 합의서를 지켜가는 게 무의미하다는 주장도 제기됐으나 정부는 이를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할 수 있는 근거로 삼아왔다. 또한 북한이 핵 도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에 있어서도 주요 근거가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최근 북한의 거듭된 도발에 맞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비핵화공동선언이 사문화됐음을 인정하고 자위적 핵 억지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15일 "자위권 차원의 평화의 핵과 미사일로 대응하는 것을 포함, 생존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라며 남한 내 핵무장을 공식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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