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만은 비움을 전제로 해” … 한국 추상회화사 한눈에

10년 투병 끝 다시 붓 잡은 단색화 작가 조용익 ‘지움의 비움’전 한국 단색화의 탄생, 그 시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한국 현대추상회화의 시작과 진행 과정을 한 자리에서, 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통해, 한번에 조망할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오는 26일부터 4월 24일까지 성곡미술관에서 열리는 ‘조용익, 지움의 비움’ 기획전은 조용익(82) 화백의 일생을 아우르는 작품세계이자, 한국 현대미술 운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종이 위에 크레용이나 사인펜으로 긁적긁적하면서 신라 토기와 조선조 백자에 관한 화집들을 뒤적인 데에서 이런 작업들이 시작됐지.”

달항아리 같은 미완의 대기를 추구한다는 조용익 화백이 환한 웃음으로 캔버스 앞에 다시 섰다. 그는 “조선의 그릇들이 비움의 미학을 통해 전수돼 왔다”며 “가득함 즉 충만은 비움을 전제로 한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세계의 요약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화면이 어둡다 싶으면 밝게 그리고, 딱딱한 느낌이 들면 부드럽게 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흙을 주무르듯 화폭을 운영하고 있다.

“내가 화면에서 바라는 것은 소박하고 말이 없는 침묵과 같은 결과야.”

그의 작품의 특징은 숨결과 맥박 같은 생동감이다. 동양화의 기운생동을 나름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work’시리즈. 숨을 쉬듯 붓을 쥐고, 노동을 하듯 캔버스 앞에서는 작가의 작업방식을 엿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작품이 숨을 쉬고 있는 것과 같은 상태라고나 할까. 동양화 필획의 기운 같은 것이지.”

대중에게 그의 이름은 낯설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미술계를 이끈 인물이다. 1958년 ‘르뽕 3인전’, 1961년 ‘제2회 파리비엔날레’, 1962년 ‘악튀엘전’ 등 한국 현대추상회화의 시작을 알린 주요 전시 참여 작가로 활동했다. 1967년과 1969년 '제5, 6회 파리비엔날레'에 한국 전권대표로 참여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국전’으로 치러진 한국현대미술대전을 주관한 한국미술협회 부회장을 여러 해 동안 지내며 한국 화단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지난해부터 큰 화두가 되고 있는 단색화 주요 작가 박서보 정상화 하종현 윤형근 정창섭 등과 함께 활동하며 한국 추상회화사에 빼 놓을 수 없는 주요 전시를 기획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불행히도 그는 지난 10여년간 투병생활로 화단에서 모습을 감췄다. 최근 들어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무구한 웃음을 되찾을 정도로 건강이 회복돼 붓을 다시 들었다. 고진감래라 할까 지난해 11월 홍콩크리스티 경매에서 그의 작품 2점이 드라마틱하게 낙찰됐다. 경매 순서가 거의 끝 순에 자리하고 있어 경매장은 그야말로 썰렁했다. 앞선 경매에서 세계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모두 유찰되는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그의 작품이 경합되며 시작가보다 세 배나 높은 가격에 낙찰됐다. 한 노화백의 재기와 새로운 단색화 작가 재발견의 순간이었다.

“작가가 붓을 다시 들 수 있다는 것은 생명을 다시 얻었다는 의미여.”

이번 전시는 한국 추상회화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앵포르멜’ 회화와 그 이후 진행된 ‘기하학추상’, 그리고 색면추상과 단색화에 이르기까지 한국 추상회화사의 맥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다. 
‘work’시리즈. 숨을 쉬듯 붓을 쥐고, 노동을 하듯 캔버스 앞에서는 작가의 작업방식을 엿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단일 계열의 모노톤 컬러, 무수한 반복행위, 그리고 수행자적 작품세계 등 단색화의 주요 특징적 요소들을 아우르고 있다. 특이한 것은 손가락과 나이프 등으로 채워진 색을 지우고 비우는 작업을 병행했다는 것이다. 화면을 뚫기도 했다. ‘비로소 지워야 비워지는’ 동양사상의 근본 철학이 고스란히 작품에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기획을 맡은 윤진섭 초빙 큐레이터는 그의 작품에 대해 “기교가 사라지며 약간 서툰 듯한, 노자가 말한 것처럼 ‘대교약졸(大巧若拙)’ 즉 커다란 기교는 서툰 것처럼 보이는 경지가 나타난다”고 평했다. (02)737-7650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