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독재 정권 멈추게 하는 것이 북한 주민 살리는 길”

[세계초대석] 오준 주 유엔 대표부 대사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응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안 조율작업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과 중국은 대북 제재라는 총론에는 공감하면서도 제재 수위를 놓고는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국인 한국은 강도 높은 제재조치가 담긴 결의안이 가급적 이른 시일 안에 채택될 수 있도록 외교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유엔 외교현장의 최일선에서 뛰고 있는 오준(61) 주유엔 대표부 대사를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 위치한 주유엔 대표부 공관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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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제재 결의안 협의는 어느 단계에 이르렀나.

“한국 정부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 등과 긴밀한 사전조율을 마쳤으며 현재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대북 제재 결의안을 조율하고 있다. 한·미·일 3국은 대폭적인 제재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제재 강화에는 동의하지만 제재 수준을 놓고는 미국과 차이가 있다.”

-과거 3차례 이뤄진 북한의 핵실험 때는 핵실험 이후 5∼23일 사이에 결의안이 나왔는데, 이번에는 좀 늦어지고 있다.

“지난달 6일 4차 핵실험 이후 한 달이 넘도록 진통을 겪고 있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채택된 결의안은 북한의 추가 도발 시 ‘중대한 추가 제재’를 취한다고 명기했다. 이전에 비해 대폭 강화된 제재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시일이 좀 걸리고 있다. 이달 안에는 과거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의 대북 제재 결의안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미사일이 아닌 위성을 발사했다고 주장한다.

“북한이 설사 위성을 발사했어도 이는 유엔의 관점에서는 미사일 발사와 차이가 없다. 과거에 나온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은 탄도미사일 기술을 사용한 모든 발사를 제재할 수 있도록 했다. 유엔이 ‘미사일 발사’를 금지한다고 규정하는 대신 ‘탄도미사일 기술의 활용’을 금지한다고 규정한 것은 이런 점을 미리 예상한 것이다.”

오준 유엔 한국대표부 대사가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 위치한 주유엔 대표부 공관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크게 강화된 대북 제재 결의안을 곧 채택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박종현 특파원
오 대사의 외가는 개성에 있고 그의 장인은 함경도에서 단신 월남한 이산가족 출신이다. 오 대사는 2014년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 인권 문제 상정을 주도했으며,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임기를 마무리하면서 “언젠가 훗날 우리가 오늘 한 일을 되돌아볼 때 북한 주민들을 위해서 올바른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라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대사는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임기를 마무리하면서 ‘한국인에게 북한 주민은 그저 아무나(anybody)가 아니다’라는 즉석 연설로 감동을 줬다. 지금은 대북 제재 결의안 도출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그렇다. 주변에서 동일한 질문을 하거나 염려를 하는 분들이 있다. 대화와 타협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시점이다. 제재는 당연한 순서다. 압박과 제재가 ‘환자’인 북한을 살리는 강력한 ‘약’이다. 더욱이 유엔의 대북 결의안은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다. 비군사적인 수단, 즉 평화적인 수단의 제재 결의안으로 북한(김정은) 정권에 타격을 주자는 것이다. 북한 정권의 독재적인 탄압정책을 바꾸도록 하는 게 결국 북한 주민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대북 제재 결의안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어려워지면 결국 북한 주민의 고통을 완화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오 대사는 1985년 유엔에서 첫 해외 근무를 했다. 이때를 포함해 유엔에서만 4차례 근무하며 30년이 넘은 외교관 인생의 3분의 2를 다자외교 현장에서 보냈다.

-다자 외교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대사의 입장에서 한국 외교의 국제적 위상을 어떻게 평가하나.

“국력 신장으로 한국 외교의 위상이 제고됐다는 것은 해마다 느끼고 있다. 우리나라의 여러 여건이 성숙하면서 외교적 경쟁력도 강화되고 있다. 유엔에서의 남북한 관계만 하더라도 격세지감이 든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남북의 한반도 관련 유엔 외교는 강대국과 중립국의 지지 확보를 위해 경쟁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모든 유엔 회원국이 북한의 잘못을 공감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 수준으로 북한에 대해 강력히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 차이만 있을 뿐이다. 지지 확보 경쟁은 옛날 이야기가 됐다.”

-유엔 대표부 대사로서 유엔 경제사회이사회(경사리) 의장과 장애인권리협약 의장을 지난해부터 맡고 있다.

“어느 나라의 외교관이든 유엔 안보리 이사국 대사와 경사리 의장, 장애인권리협약 의장을 임기 중에 한꺼번에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경사리는 유엔 창설 당시 헌장에 6대기구로 규정됐으며, 총회·안보리와 실질적인 토의기구의 하나다. 경사리는 지난해 채택한 국제사회의 개발 목표 이행을 주도하게 된다. 저의 외교관 활동시간의 절반 이상은 경사리 의장으로 보내고 있다.”

-장애인권리협약 의장을 맡게 된 배경과 현안을 설명해 달라.

“유엔의 장애인권리협약의 2015∼2016년 의장 임기는 아시아 국가가 맡기로 돼 있었는데, 장애인 문제에 적극성을 지닌 국가가 맡아야 한다는 국제장애연맹의 권유로 외교부 본부와 협의해 맡게 됐다. 세계 인구가 70억명인데 이들 중 장애인이 얼마나 되는 줄 아는가. 세계 전체 인구의 약 15%인 10억명으로 우리의 일반적인 예상보다 많다.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접근은 보호나 복지가 아닌 권리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유엔이 창설된 지 70년이 됐는데 그동안 7개의 인권 관련 협약이 만들어졌다. 여성·아동·소수인종 등 모두 사회적 약자의 권리에 대한 내용을 담았는데, 가장 최근 채택된 게 장애인협약이다. 장애인권리협약 의장으로서 지난 1년은 유엔이 먼저 장애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 집중했다. 올해는 장애인의 권리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 제고에 두고 있다.”
-부친도 외교관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버지는 20대 시절 전남 여수에서 일제의 노동운동 탄압 사건으로 처벌받았다. 2년 반 동안 옥살이를 하시고 폐결핵에 걸리기도 했는데, 그 후 대학에서 영어를 공부했다. 1948년 외무부 창설요원으로 참여했고 1952년부터 3년 동안 미국 로스앤젤레스 영사를 지냈다. 1960년 외교관을 그만둘 때까지 부친의 인생이 알게 모르게 저에게 영향을 끼쳤다. 개인적으로 언론계에서 활동하고 싶었지만, 대학 시절 친구들의 권유로 외무고시를 보게 됐다.”

그는 지난해 8월 다른 나라의 유엔주재 대사들과 록밴드를 만들어 앨범을 만들기도 했다.

-최근 출간한 저서 ‘생각하는 미카를 위하여’(오픈하우스)에서 젊은 세대를 향한 따뜻한 마음을 드러냈다.

“살아오면서 개인적으로 지킨 원칙 중의 하나가 ‘저에게 뻗어온 손은 반드시 잡는다는 것’이다. 유엔 인권 연설 이후 저에게 대화를 건넨 많은 분들, 특히 젊은 분들에게 하나하나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는 대신에 저술을 생각해 본 것이다. 책은 처음 써 보았는데, 정제된 느낌을 글로 옮기기 때문에 ‘생각 공유’의 훌륭한 수단이 된다는 점을 알게 됐다.”

박종현 특파원 bali@segye.com

대담=박종현 워싱턴특파원


오 대사는

●1955년 서울 출생
●서울대 불문학과 졸업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정책학 석사
●주유엔 대표부 2등 서기관
●외교부 국제연합정책과장
●주말레이시아 참사관
●유엔총회 의장 보좌관
●주브라질 공사
●주유엔 차석대사
●외교부 다자외교조정관
●주싱가포르 대사
●주유엔 대사(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의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