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2-18 19:44:52
기사수정 2016-02-18 19:44:52
새 유물로 본 박물관 독해
박물관에서 관람객은 보고 싶은 걸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보여주는 것만 보는 것일까. 전시 유물이 많으니 스스로 선택한다고 ‘착각’하기가 쉽지만, 엄밀히 따지면 관람객의 재량은 제한적이다. 박물관 수장고에는 많게는 수만점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고, 그중 박물관이 ‘보여주기로’ 결정한 일부만 관람객과 만난다. 또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라는 판단에 따라 관람객의 주목도, 유물의 맥락과 의미는 달라진다. 물론 박물관의 판단, 결정이 왜곡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유물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 최적의 의미를 전시에 구현하기 위해 고민과 토론을 거친다. 전시실에 담긴 메시지의 독해가 박물관을 즐기는 한 방식일 수 있는 이유이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중박)과 국립고궁박물관(고박)이 각각 새로 꾸민 ‘고려1·2실’과 ‘조선의 궁궐실’·‘왕실의 생활실’에서 박물관이 관람객에게 다가가는 방식을 엿볼 수 있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고박 전시실 입구 바로 왼편에 대형 그림 한 점이 걸려 있다. 고종대 경복궁을 중건한 뒤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4m의 ‘북궐도형’이다. 중건 당시 경복궁의 면모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귀한 유물이지만, 덩치가 워낙에 커 높이가 2m가 채 안 됐던 이전 진열장에 거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고박은 북궐도형 전시를 위해 진열장의 높이를 거의 천장까지 키웠고, 유리도 최대한 늘렸다. 지금도 3분의 1 정도는 접혀 보이지 않지만, 전시실 개편으로 북궐도형은 처음으로 관람객과 만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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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이 개편한 고려1실의 모습. 고려 지배층의 화려한 문화를 보여주는 유물과 고려인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유물을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실을 구성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
중박은 개편된 고려실에 ‘나전경함’을 내놨다. 나전경함은 세계적으로 9점만 전해지는 희귀한 유물이다. 2014년 중박에 기증됐고, 특별전을 통해 공개된 적은 있지만 상설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물관은 전시실을 개편하며 ‘새로운 선수’를 많이 소개해 주목도를 높이고 메시지를 분명하게 한다. 고박은 북궐도형을 창덕궁·창경궁을 그린 ‘동궐도’ 복제품 등과 같은 코너에 전시해 조선의 5대 궁궐을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중박은 2만5000개 이상의 자개 조각으로 장식된 나전경함을 전성기의 청자와 나란히 보여주며 고려 문화의 화려함을 전한다. 고려실에 전시된 700여점 중 명문기와, 꽃장식의 벽돌, 건축 부재 등 200여점이 새로 공개되는 유물이다. 고박의 궁궐실·생활실 유물은 410여점 중 110여점이 이전 유물과 교체된 것이다.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관람의 효율성, 쾌적한 환경을 만드는 것은 전시실을 꾸밀 때 고민이 집중되는 부분이다.
중박의 고려 1실은 왕실·귀족·관료 등 지배층의 문화를 대변하는 유물과 일반적인 생활양식을 보여주는 유물을 대비해 고려문화를 조명한다. 전시실 중앙에 자리 잡은 아미타불 좌상은 청자, 금속공예품 등이 보여주는 중앙 지배층 문화의 화려함과는 구별되는 수더분한 인상을 가졌다. 고려시대 지방의 호족 세력이 창출했던 다양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소’에서 생산된 괭이나 보습 등은 특수행정단위였던 향소부곡의 실체를 보여준다. 고분에서 많이 출토되었으나 그간 주목을 받지 못했던 숟가락도 여러 점을 모아 강조했다. 서윤희 학예연구사는 “특정 인물이나 사건에 초점을 맞췄던 이전 전시실과 달리 고려인들이 어떻게 살고, 무엇을 먹었는지 등 일상의 모습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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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의 조선궁궐실에 북궐도형(왼쪽 벽면)과 동궐도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은 전시실을 새로 꾸미면서 진열장을 최대한 올려 높이 4m의 북궐도형을 전시할 수 있도록 했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
고박은 전시실에 시원한 느낌을 들게 하고, 궁궐 현장감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 전시실 내부의 벽을 텄고 경회루의 2층 누각, 왕비의 침전을 1대1로 재연한 구조물을 일직선상에 배치해 한눈에 들어오게 했다. 궁궐의 모습을 담은 폭 7m의 대형 스크린을 설치한 것도 눈에 띈다. 임소연 학예연구사는 “관람객들이 휴식이나 산책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느끼도록 전시실을 꾸몄다”며 “5대 궁궐의 전반적인 모습, 왕의 권위와 신성성, 궁궐의 구체적인 공간구성, 왕실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물을 동선에 따라 배치했다”고 말했다.
◆불편해도 어쩔 수 없다(?)
중박 고려2실의 한쪽 벽면을 차지한 고려불화 2점은 다른 유물과 비교하면 보기가 불편하다. 진열장에 얼굴을 바짝 대어야 그림이 제대로 보인다. 조명을 낮췄기 때문인데 유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 못지않게 잘 보관하는 것도 전시실을 꾸밀 때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유물에 최적화된 조명, 온·습도를 유지하는 게 관건이다. 고려불화와 같은 종이 재질의 유물은 빛을 적정 수준 이상으로 받으면 색이 바래기 때문에 3개월 이상 전시하는 경우가 드물다. 전시 후에는 일정기간 동안 휴식기를 가진다.
나전경함도 예민한 유물이다. 습도에 민감하다. 자기 등 다른 재질의 유물과 함께 진열되어 있어 나전경함에만 환경을 맞출 수 없어 조만간 전시에서 뺄 예정이다. 서윤희 연구사는 “워낙에 귀한 유물들이기 때문에 보존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관람객들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