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 찼던 저축은행 수사…잇단 무죄로 초라한 마침표

합수단 1년5개월간 137명 기소…진술에 의존한 '무리한 기소' 비판
저축은행에서 뒷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무소속 박지원(74) 의원이 18일 대법원에서 무죄 판단을 받음에 따라 2011년부터 5년간 지속한 저축은행 비리 수사·재판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저축은행을 겨냥한 검찰 수사는 관리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불법이 판치던 제2금융권에 처음으로 사정의 칼날을 들이댔다는 의미가 있었다.

답변하는 박지원
저축은행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무소속 박지원 의원이 지난 2월 1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받은뒤 법정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검찰이 주축이 된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은 2011년 9월 22일 출범한 이래 1년 5개월간 정·관계 인사 21명을 포함해 총 137명을 재판에 넘겼다. 합수단은 당시 대형 비리 수사의 성공 모델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이 비리에 연루된 정·관계 인사들 상당수가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결과적으로 무리한 수사였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난 2011년 출범된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
◇ 저축은행, 파고 또 파도 끝없는 비리의 '화수분'

저축은행 비리 수사는 2011년 초부터 불법영업으로 서민들의 예금을 탕진한 부실 저축은행 10여 곳이 줄줄이 영업정지를 당하면서 표면화했다.

검찰은 저축은행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고 판단, 경찰·국세청·금융감독원·예금보험공사 등 관계기관과 함께 80여명의 규모의 합수단을 구성해 수사에 들어갔다. 합수단은 특별 수사의 총본산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산하에 설치됐다.

수사가 진척되며 불법·부당 대출, 횡령·배임, 분식회계, 위법 배당 등 각종 탈법 행위가 난무한 저축은행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부산저축은행은 불법 영업행위의 규모가 9조원에 달했다.

해당 저축은행들이 정·관계와 검은 거래를 한 정황도 드러났다. 저축은행 수사의 초점은 사주·경영진의 비리에서 권력형 비리로 옮겨갔다.

합수단은 이명박 전 대통령 친·인척과 청와대 인사, 거물급 정치인들을 정조준했다.

합수단은 가장 먼저 제일저축은행에서 '영업정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관계기관에 압력을 넣어달라'는 청탁과 함께 4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2011년 12월 이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오빠 김재홍씨를 구속 기소했다.

이 전 대통령의 손윗동서가 제일저축은행에서 거액의 고문료를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김두우 전 청와대 총무수석,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김세욱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실 선임행정관, 김해수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 이 전 대통령을 보좌한 청와대 인사들도 저축은행에서 뒷돈을 받은 혐의로 줄줄이 재판에 넘겨졌다.

유력 정치인들도 수사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만사형통'(萬事兄通)으로 불리며 위세를 떨친 이상득 전 의원은 솔로몬저축은행과 미래저축은행에서 3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012년 7월 구속기소됐다. 현직 대통령의 친형이 구속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었다.

정두언 의원과 박지원 의원도 저축은행에서 각각 1억3천만원과 1억4천만원의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 같은 해 9월 차례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석현 의원, 윤진식·최연희·이화영·이성헌·정형근·임종석·서갑원 전 의원,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역시 금품수수 혐의가 불거져 법정에 서야 했다.

합수단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2013년 2월 27일 활동을 마무리했다. 1년 5개월 남짓한 기간 재판에 넘겨진 인사는 정·관계 21명, 저축은행 대주주·경영진 47명, 감독기관 공무원 22명 등 137명에 달했다.

이 수사는 대검 중수부가 폐지되기 전 사실상의 '마지막 작품'으로 기록됐다.

◇ 정치인들 줄줄이 무죄…무리한 수사 지적도

검찰은 재판에 넘긴 이들의 유죄 입증에 상당한 자신감을 보였지만 법정 상황은 반대로 흘렀다. 정·관계 주요 인사들이 줄줄이 무죄를 받고 누명을 벗었다.

무죄가 확정된 정치권 인사만도 정두언·이석현 의원, 이화영·임종석·윤진식·서갑원 전 의원 등 6명에 이른다.

부산저축은행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서갑원 전 의원은 2012년 1심부터 상고심까지 내리 무죄 판단이 내려졌다.

제일저축은행에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진식 전 의원은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무죄가 났고 이 판단은 대법원 판단까지 이어졌다. 그는 2014년 10월 무죄가 확정됐다.

부산저축은행에서 아파트 분양 승인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가 드러난 이성헌 전 의원 역시 1∼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서 2014년 2월 검찰의 상고 포기로 무죄가 확정됐다.

검찰의 이례적인 상고 포기는 친박 실세 의원 봐주기 아니냐는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까지 불렀다. 이석현 의원도 1∼2심 무죄에 이어 검찰의 상고 포기로 무죄가 확정된 케이스다.

정두언 의원의 무죄 확정은 검찰의 저축은행 수사 결과 자체에 의문부호가 달리는 계기가 됐다.

그는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까지 됐으나 2심에서 일부 무죄로 징역 10월로 감형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공소사실 전부를 무죄로 보고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정 의원은 2014년 11월 파기 환송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재판부는 공여자 진술 외에 혐의를 인정할 객관적 물증이 없고 공여자 진술마저 일관성이 없다며 미진한 검찰 수사를 지적했다.

이밖에 금품수수 혐의가 불거진 이철규 전 경기지방경찰청장,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원장, 김장호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김두우 전 청와대 총무수석 등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유력 정치인 가운데 유죄가 인정된 인사는 이상득 전 의원과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정도다.

이 전 의원은 2014년 6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 2개월이 확정돼 수감 생활을 했다. 또 이 전 지사는 제일저축은행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 일부가 인정돼 작년 4월 벌금 1천만원이 확정됐다.

유력 정·관계 인사들이 잇따라 무죄를 선고받자 애초에 무리한 기소가 아니었느냐는 비판론이 고개를 들었다.

검찰이 확실한 물증을 찾으려 노력하기보다는 신빙성이 떨어지는 저축은행 경영진의 진술에만 의존해 편의적 수사를 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박지원 의원 사건도 대법원에서 사실상 전부 무죄 취지로 서울고법에 돌려보냄에 따라 파기 환송심을 거쳐 무죄가 확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가 된 저축은행 경영진과 대주주, 금융감독원 일부 실무자급 전·현 직원들이 대거 중형을 받고 수감되는 등 수사 성과가 적지 않았지만 유력 인사들의 무죄 판결로 빛이 바랬다.

당시 합수단장으로 저축은행 비리 수사를 진두지휘한 최운식 변호사는 "같은 공여자의 진술인데 공무원은 유죄가 나고 정치인은 무죄가 나는 게 다소 의아스럽다"며 "당시 수사 과정 자체는 큰 문제가 없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