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는 과연 어느 나라 땅인가

조선왕조실록에 ‘조선땅’으로 기록
1877년 강화도조약 직후 일본땅으로
이승만 정부 1952년 전후 반환 요구
역사적 사료 통해 대마도 영유권 추적
서동인 지음/이오봉 사진/주류성/2만2000원
조선의 거짓말/서동인 지음/이오봉 사진/주류성/2만2000원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지도에는 대마도(쓰시마)가 조선 땅으로 나와 있다. 반면 같은 시대의 일본 지도에는 대마도가 표기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조선조 500년 동안 대부분은 대마도를 조선 땅이라고 여겼다. 독도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는 주장이 나오곤 하는 이유다. 과연 대마도의 진실은 무엇인가?

역사연구가 서동인씨와 사진기자 출신의 이오봉씨가 쓴 이 책은 조선왕조 시작부터 일제 패망 이후까지 대마도를 둘러싼 역사적 사료를 되짚어 보면서 대마도의 영유권을 추적해 본다. 대마도에 얽힌 역사적인 사실을 차분히 추적해 간 보기 드문 역사서이다.

① 1851년 런던과 뉴욕에서 발행된 한국지도에 대마도가 조선령으로 표기되어 있다. 2005년 4월 29일 연합뉴스가 보도한 사진이다.
② 덕혜의 생전 모습.
③ 고종의 막내딸 덕혜옹주와 대마도주의 결혼을 축하하는 뜻으로 세워진 기념비로, 대마도 현지에 세워져 있다. 덕혜옹주는 일제의 정략결혼으로 인해 불행하게 살다 죽었다.
연합뉴스
대마도가 조선 땅이었음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엄연히 나와 있다. 조선이 형편없이 깨진 임진왜란 이후에도 대마도는 조선 땅이었다. 조선 사람들은 대마도 동편의 바다를 조선해(朝鮮海)로 불렀고, 일본 또한 그리 불렀다. 그랬지만 구한말 고종시대에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일본은 강화도조약 직후인 1877년 ‘대마번’을 나가사키현에 편입시켰다. 대마도주에게 백작 벼슬이라는 당근을 주고 아예 일본 땅으로 만들어 버렸다. 대마도가 지방 호족의 개인 소유지가 아니라 일본의 국유지가 된 순간이다.

을사늑약 이후 일본은 대마도 동편의 해역을 조선해라는 이름 대신 ‘현해탄’으로 바꿔 버렸다. 이렇게 해서 조선해라는 이름은 우리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1904~1905년 러일전쟁 이후 일본은 대마도에 대한 지배권을 더욱 강화했다. 1945년 종전 직후 일본 영해를 재확인하는 맥아더라인이 발표되었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대마도가 일본 영토임을 국제적으로 공인받기에 이르렀다.

이승만정부는 1952년을 전후해 대마도를 돌려줄 것을 외교문서를 통해 요구했으나 미국정부는 거절했다. 무턱대고 과거 조선 땅이니 돌려 달라는 이승만정부의 접근은 무식한 외교의 전형이었다. 전쟁통이었으니 정신 없었겠지만, 분명한 사료와 근거를 갖고 논리적으로 접근했어야 했다. 만일 당시 이승만 정권이 일본처럼 용의주도하게 움직였다면 미국 또한 달리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은 당시 요시다 시게루를 비롯한 외교라인을 총가동시켜 대마도가 넘어가지 않도록 로비에 나선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고려, 조선시대 대마도는 인후지처(咽喉之處)라 했다. 대마도는 한반도에 드나드는 목구멍 같은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조선조 말, 덕혜옹주의 비극적 사랑과 비애가 아롱졌던 곳도 대마도였다. 저자는 대마도주의 가계는 본래 고려인이었다고 주장한다. 500년 동안 조선 정부는 대마도에 많은 것을 그냥 내주는 ‘퍼주기 정책’을 폈다. 그러나 조선은 실속을 차리지 못했다.

저자는 “조선은 엄청난 실책을 저지르고도 끝내 그 실책을 바로잡지 못했다”면서 “궁벽한 오지의 작은 섬에 사는 왜인을 조선 사람들은 업신여겼다. 대마도는 안이와 편리함에 익숙한 조선 관료들의 최악의 실패작”이라고 혹평했다. 책에는 다양한 사진자료와 현 대마도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대마도를 새삼 깨우치도록 만드는 책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