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실험 직전 美에 평화협정 논의 제안한 北 속내는

미 ‘선 비핵화·후 평화협정’→ ‘병행 논의’로 입장 바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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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4차 핵실험 직전인 지난해 말 미국에 평화협정 논의를 제안한 것은 핵실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형적 수법으로 분석된다.

박근혜 대통령, 버락 오바마 대통령, 북한 김정은
북한은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미·중, 미·소 간 화해 분위기가 조성된 1970년대 이후 평화협정 체결 문제를 거론해왔다. 1984년 1월 당시 강성산 북한 총리가 대남 제의를 하고, 이듬해 1월 김일성 주석이 신년사에서 남·북·미 3자회담을 통한 북·미 간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 체결과 남북 간 불가침선언 채택 등을 주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북한이 그간 주장한 북·미 간 평화협정 내용은 주한미군과 핵무기를 비롯한 군사장비 철수가 핵심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는 2000년 10월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인민군 차수)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해 빌 클린턴 미 대통령과 만나 발표한 ‘북·미 공동 코뮈니케’, 6자회담을 통한 2005년 9·19 공동성명과 2007년 2·13합의에서도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북핵 협상이 꼬이면서 구체적 논의는 진전되지 않았다. 김정은체제 출범 이후에도 북한은 여러 차례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했고, 비핵화가 아닌 핵 군축을 강조했다.

평화협정 논의 가능 여부는 북한이 핵 포기 의사가 있는지에 달려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는 상황에서 평화협정 논의가 시작되면 논의 기간 만큼 북한의 핵 폐기 시점만 지연될 뿐 북한이 핵능력을 고도화할 시간을 벌 수 있는 ‘덫’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에 평화협정 논의를 제안하고 비핵화와 연계한 미국의 ‘역제의’를 수용하지 않은 것은 핵 보유 의지가 강하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왼쪽 두번째)과 탈북 북한민주화 운동가들이 2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테러방지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 하 의원,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연합뉴스
남광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는 22일 “북한이 핵실험 직전 미국에 평화협정 논의를 제의한 것은 핵실험 정당성 확보 차원의 명분 축적용에 불과하다”며 “북한이 핵 보유를 위해 제 갈 길을 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평화협정 체결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은 추가 핵실험을 위한 명분쌓기용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이 평화협정 논의를 북한의 비핵화와 연계한 것은 선(先) 비핵화를 전제로 한 기존 입장과는 온도차가 있다. 향후 한·미 간 정책 균열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란과의 핵협상 타결로 한껏 고무된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가 임기 마지막 해에 북한 핵 문제 타결로 유종의 미를 거두려고 북한에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는 게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오바마 정부가 외교 분야에서 역사적 유업을 남기려고 평화협정 체결 방안을 검토하는 등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바마 정부는 그동안 ‘전략적 인내’ 정책을 통해 ‘북한 도발→ 제재 추진→ 협상→ 보상’의 기존 패턴을 깨겠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런 오바마 정부가 북한의 평화협정 논의 제안에 응한 건 임기를 마치기 전에 외교 치적을 하나 더 추가하려는 움직임의 일환이었다는 해석이다.

김민서 기자,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spice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