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환율 급등' 심상찮은 외환시장

보름만에 37원 올라 외환시장이 심상치 않다. 자고 나면 원·달러 환율이 오르기만 한다. 아시아 주요국 통화에 비해서도 원화 약세가 너무 과하다. 외환당국이 구두개입에 나서고 있지만 효과는 신통치 않다. 외환시장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세계 경기둔화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현상과 최근 불거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 글로벌 펀드인 템플턴 등의 자금이탈 등을 꼽고 있다. 주목할 대목은 원화 약세 기조가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둘러싼 한·중 간 갈등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원화 약세는 국방부가 지난 7일 사드 배치를 공식 협의하기로 한 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외환시장 일각에서는 사드 협의로 중국이 경제적 보복 조치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외신기자간담회를 열어 한국경제 현황과 정책방향 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사태가 심상치 않자 정부가 긴급진화에 나섰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2일 “환율에 급격한 변화가 있으면 신속하게,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이날 인천공항 수출입청사에서 열린 전국 세관장회의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최근 원·달러 등 환율 상승세가 지속된 데 대한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원칙론은 (환율이) 시장에서 결정나는 것이지만 지금은 (외환시장 변동성을) 살펴봐야 할 시기”라면서 외환시장의 과도한 쏠림현상에 대해서는 대응하겠다는 뜻을 다시금 밝혔다.

유 부총리는 이어 열린 외신기자간담회에서도 시장 달래기에 안간힘을 쏟았다. 그는 사드 배치와 관련한 한국 경제의 영향에 대해 “경제는 경제고 정치는 정치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사드 배치가 어떻게 귀결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정치의 영역”이라며 “양국의 교역 등 경제에는 큰 영향이 없으리라고 예측한다”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또한 “최근 글로벌 경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증가했으나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은 여러 측면에서 견고하다”며 “엄중한 경제상황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고 효과적·시장친화적인 정책을 입안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도 했다.

외환당국의 강도 높은 개입에도 원화 약세 기조는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234.4원으로 전 거래일과 같은 가격으로 장을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6원 오른 달러당 1236.0원에 거래를 시작해 등락을 거듭하다 오후 들어 낙폭을 줄이면서 보합세를 보였다. 이로써 원·달러 환율은 지난 16일 이후 5거래일 만에 상승세가 멈췄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은 지난 5일 이후 이날까지 37원 급등하며 달러화 대비 가치가 3.09%나 낮아졌다. 이는 아시아의 다른 나라의 달러화 대비 통화 가치 움직임과 비교해 낙폭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같은 기간 일본 엔은 달러화 대비 가치가 3.72% 상승했다. 인도네시아 루피아도 1.04%, 홍콩 달러는 0.19% 올랐다. 통화 가치가 내린 싱가포르 달러(-0.56%), 대만 달러(-0.67%), 말레이시아 링깃(-1.41%) 등도 원화와 비교해서는 낙폭이 작았다.

기재부 관계자는 “유가 추가 하락이나 신흥국 경기 둔화 가능성에 최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까지 불거져 환율 상승압력으로 작용했다”면서 “템플턴의 아시아 지역 자산 재조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상수지 흑자와 높은 외환건전성 등으로 원화가 준안전통화로 지위가 격상됐었는데, 수출 부진이 계속되면서 경제 펀더멘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퍼지고 있다”며 “이러한 원화 약세 요인에 대북 리스크가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서정훈 KEB하나은행 외환파생상품영업부 연구위원은 “사드 배치 협의와 다음달 한·미 키리졸브 훈련 등 북한 이슈가 연결고리를 가지고 계속되고 있다”며 “원화가 다른 통화보다 가치가 크게 떨어지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현태 기자, 세종=이천종 기자 sky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