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2-24 21:02:48
기사수정 2016-02-24 21:02:48
영화 '귀향'서 위안부 열연 배우 손숙
“나라를 되찾은 지 7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할머니들의 넋을 그렇게 내팽개쳐 두면 안 되잖아요. 타국 하늘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을 영혼이라도 고향에 모셔 와야죠…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기획에서 개봉까지 무려 14년이 걸려 화제를 낳은 조정래 감독의 새 영화 ‘귀향’에서 일제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영옥’을 열연한 배우 손숙(73)은 “씻김굿이나 진혼제 같은 영화”라고 소개한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그토록 울어보기는 처음이었어요. 조 감독에게 ‘눈물이 줄줄 흐른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곧바로 연락이 와 만나게 됐죠.”
그는 이번 영화에 출연료를 받지 않고 재능기부 형식으로 출연했다.
“과연 끝까지 촬영할 수 있을까…. 마음만으로는 안 되는 거잖아요. 일단 돈이 있어야 제작할 수 있는건데. 다 만들어 놓고서도 개봉 못하는 영화들이 종종 있으니 반신반의 할 수밖에 없었죠. 찍다 보면 ‘제작비가 떨어졌다’고 하고, 며칠 지나면 또 ‘돈이 들어왔다’면서 찍은 거예요. 그처럼 힘들게 작업했는데, 신기하게도 힘들 때마다 조금씩 하나씩 풀리더라고요. 어려운 형편이 알려진 다음 유명 스태프들도 돈을 받지 않고 일하겠다며 가세했어요.”
조 감독이 ‘나눔의 집’(생존 위안부 할머니 후원시설)을 처음 방문한 것은 2002년 봉사활동 때다. 강일출 할머니의 심리치료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을 보고 충격을 받은 조 감독은 곧장 시나리오를 완성하지만 투자 유치에 실패하고, 대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후원을 받는 ‘크라우드 펀딩’을 시도한다. 여기에 7만5270명(1월19일 기준)이 십시일반 참여해 긴 세월 동안 12억원의 제작비가 모인 것이다. 일본과 미국에서도 후원의 손길이 이어졌다. 영화는 10분이나 되는 엔딩 크레디트에 후원자 명단을 모두 올리며 피날레를 장식한다. 할머니들이 직접 그린 ‘14세 소녀 끌려가는 날’ ‘빼앗긴 순정’ 등의 그림들도 함께 소개해 그 의미를 더한다.
“대신 저는 런닝개런티를 요구했어요. 수익이 나면 ‘나눔의 집’에 기부하려고요. 힘들게 촬영했지만 참여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입니다. 해방이 늦어졌더라면 나도 끌려갔었을 거라 생각하니, 남의 일이 아니더라고요.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고 ‘저런 일이 정말 있었구나’ 깨달아야 해요.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아야죠. 어떤 명분으로든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상영관을 늘려 모두에게 보여주어야 하고,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보아야 할 영화입니다.”
함께 출연한 후배 연기자들과 스태프들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는다.
“현장에 가보면 힘든 여건에도 불구하고 스태프들이 똘똘 뭉쳐 일하는 거예요. 어린 배우들은 지난 1년 반 동안 조 감독과 함께 다니다보니, 어느 샌가 영화 속 그 인물이 되어 있었고…. 얼굴이 안 알려진 연기자들을 캐스팅한 게 오히려 관객의 몰입을 유도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익숙한 얼굴이 주는 선입견이 없으니….”
극중 ‘정민’역의 강하나와 ‘은경’ 최리, ‘영희’의 서미지 등은 자신의 촬영 분량이 없는 날에도 현장에 나와 극의 전반적인 흐름을 익힐 만큼 열의를 보였다.
“일본 정부는 이제 마흔네 분밖에 남아 계시지 않는 우리 할머니들이 빨리 죽기를 바라겠지만, 설령 긴 세월이 지난다 해도 할머니들은 우리 가슴속에서 영생하실 겁니다. 이 영화는 타향에서 돌아가신 20만명의 억울한 영령들을 넋으로나마 고향 집으로 모셔와 따뜻한 밥 한술 올려드린다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단순히 일본을 비난하거나 섣불리 생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손숙은 여전히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다독은 그의 오래된 취미다. 인터뷰를 끝내고 직접 몰고 가는 차 안 조수석에 책 몇 권이 보인다. “독서는 배우의 기본”이라는 그는 ‘한국연극계의 대모’답게 “활동량이 많은 ‘연극’이 건강을 지키는 비결”이라고 말한다. 얼마 전 그는 25년간 진행해온 라디오를 그만두었다. 올 4월 신구와 함께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로 또다시 연극 무대에 오른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