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대’ 때문에 제자와 싸운 선생… 짧은 소설 속 뚜렷한 아이러니 내재

이기호의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한때 유행했던 짧은소설을 일컬어 ‘콩트’라 했고 점잖게는 손바닥만 한 소설이라는 의미의 ‘장편(掌篇)소설’이라고도 명명했다. 짧은 만큼 말미의 반전이 중요한데 억지 반전이 쓸쓸했고 반전이 없어 허망한 경우가 많았지만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에 빠져드는 매력이 충분한 장르였다. 최근에는 찾아보기 힘든 짧은소설 모음집 이기호(46·사진)의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마음산책)가 눈길을 끈다.

경찰서에 선생이 제자를 폭행했다는 이유로 불려온다. 그 선생은 합의하라는 경찰의 종용을 물리치며 말한다. “아니죠. 그러면 누굴 사랑하는 게 아니죠. 사랑이 어디 합의할 수 있는 거던가요?” 그 선생은 소녀시대 태연양 때문에 제자와 그리 싸웠다. 이 짧은소설의 제목은 ‘벚꽃 흩날리는 이유’다. 이처럼 명징한 반전이 구사되는 짧은소설은 전형에 가깝다. 모든 짧은소설에 이처럼 뚜렷한 아이러니가 선명하게 내재된 건 아니다.

아내가 어느날부터 아파트 베란다에 이불을 깔고 잠을 잔다. 그러다가 어느날 어디론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린다. 1층 화단에 떨어진 시체도 없다. 아내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아내의 방’에서 이기호는 말한다. “한데 정말 제 아내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정말 빨래가 되어버린 것일까요? 저는 정말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이 짧은소설의 말미에는 아무런 반전도 실마리도 없다. 이기호가 최근 ‘창작과비평’ 봄호에 발표한, 상대적으로 긴 단편 ‘오래전 김숙희는’의 축약된 버전으로도 읽힌다. 이 단편에서 짧은 평화는 내재된 불안과 불온의 파편 같은 것이었다.

사채까지 손을 댄 끝에 생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나’는 번개탄과 함께 소주를 사서 승용차 안으로 들어온다. 담뱃불 좀 붙이자고 차창을 두드리는 간고등어 행상에게 라이터를 빌려주었던 나. ‘미드나잇 하이웨이’의 그 ‘나’에게 그 행상이 하는 말은 짜릿한 반전의 한 대목이지만, 다른 짧은 소설들도 눈물겹고 따스하긴 마찬가지다.

“저기 그러지 마시고요, 선생님. 여기 벤치에 앉아서 저하고 같이 고등어나 한 마리 구워 드시죠. 어차피 라이터도 저 주셔서 번개탄 붙이기도 어려울 텐데… 뭐, 그냥 허기나 채우자고요. 별도 좋은데.”

‘나’는 그가 손에 쥔 라이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뚝뚝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기호는 ‘작가의 말’에 짧은 시조를 남겼다. “짧은 글 우습다고 쉽사리 덤볐다가/ 편두통 위장장애 골고루 앓았다네/ 짧았던 사랑일수록 치열하게 다퉜거늘”이라고.

조용호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