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리포트] 30년 넘어 만난 옆방 총각… '그때 그 추억' 새록

자동차로 20여 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30년 전 그때를 기억나게 하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무나 반갑고 기쁜 소식이었다. 대학시절 같은 집에 함께 자취했던 옆방 총각이 중년을 훌쩍 넘은 나이에 가까이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기했다.

그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 집에 여러 명의 하숙생이 있었고 모두 남학생들이었다. 동생들과 함께 자취하고 있었던 나는 말만 붙여도 연애한단 말을 들을까봐 언제나 눈으로만 인사를 나누던 그 시절이었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나 싶었다. 그런데 언뜻 한 가지 빚 갚을 일이 기억났다. 어느 겨울 새벽잠에서 깨 아침밥을 준비하는데 연탄불이 가물가물할 때의 일이다. 동생들 도시락을 서너 개 싸야 하는데 연탄불은 자꾸 꺼져가 옆방 학생의 아궁이를 몰래 이용하곤 했다. 연탄 한 장이라도 아끼며 살던 때라 남의 연탄불 구멍을 활짝 열어놓고 도시락 반찬을 만들었던 그 빚을 갚아야겠다는 구실로 동생들과 함께 그 사람을 찾아갔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옆방 총각은 바로 알아보면서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의 부인은 당시 자취방에 자주 드나들었던 그 아가씨였다.

그때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던 사이였는데 어찌 그 시절 얘기가 봇물처럼 터져나오는지 정말 즐거움과 더불어 신기할 따름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속에 쌓인 말들이었을까. 하숙과 자취방이 어우러졌던 그 집에 20여 명 가까이 살았는데 한 명 한 명 소식을 들춰가며 나누는 옛이야기는 정으로 흘러 넘쳤다. 여름에는 낮에 받아놓은 물이 햇볕에 따뜻하게 데워져 저녁 무렵 돌아가며 샤워를 하곤 했다. 먼저 물을 쓴 사람이 많이 쓸 땐 주인 아주머니 눈치를 보던 일까지 정말 재미난 옛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도 끝이 없었다.

정말 그 시대 추억을 담은 사람은 반가웠다. 나이 들면 추억보따리 풀어가며 살아간다는데 스마트시대에 무슨 보따리를 싸며 살고 있는지 다시 한번 조용히 생각해 본다. 반려견 천만 시대라고 하는 요즘 사랑과 정에 메마른 까닭은 아닌지 싶다. 지구촌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시대에 더 넓고 큰 추억보따리를 쌀 줄 아는 ‘사람 있는 시대’를 만들어가면 좋겠다.

송현숙 리포터 heains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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