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2-25 19:27:25
기사수정 2016-02-25 19:27:25
어느 정도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엄마에게 제일 궁금했던 얘기를 꺼내게 마련이다. “엄마는 아빠가 좋아, 내가 좋아?” 옆에서 남편이 지켜보고 있다가 질투라도 느낀 건지 내가 잠시 망설이는 사이 먼저 “당연히 엄마는 아빠가 더 좋다고 대답해야 한다”고 입을 뗀다. 결혼 생활의 주인공은 아이가 아니라 바로 ‘우리’라고 늘 강조하는 남편이다.
물론 그런 말을 들으면 행복하지만 실제로 ‘우리’보다는 아이가 늘 주인공인 게 가정의 현실이다. ‘우리’보다는 늘 아이가 먼저였고 반찬도, 인테리어, 외식 메뉴도 모든 것이 전부 아이에게 맞춰 돌아갔다. 지금은 아이가 어리고 봐줘야 할 것투성이라서 아이에게 맞춰 돌아가는 것들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까닭에 이번 설연휴 전까지만 하더라도 둘째 계획은 늘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혼자일 아이에게 형제를 만들어 줘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단지 나와 신랑을 닮은 아이를 낳아 예쁘게 기르고 싶었다.
하지만 둘째는 없다는 확신을 갖게 해줬던 계기가 생겼다. 설날 아침부터 떡국에다 하루 종일 음식으로 입도 배도 쉴 틈이 없었던 저녁 무렵이었다. 집안에 아이를 봐줄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고모들 덕분에 우리는 걱정 없이 계획에 없던 산책을 나가게 되었고, 날씨는 춥지 않아 좋았다. 둘이 손을 잡고 걸어본 게 얼마 만인지 한 시간 남짓을 거닐면서 시댁·친정 집안 이야기 대신 남편과 나에 대한 그동안 쌓인 얘기를 나눴다. 그리곤 집 근처 작은 술집에 들어가서 무의미한 말만 해대는 시간이었는데도 자는 아이를 보고 있는 것과는 다른 느낌의 감동으로 기분이 상쾌했다. 마치 마음속에 봄이 온 것처럼 싱그러운 기분이었는데 이날을 계기로 신랑이 왜 그토록 확고하게 둘째는 없다고 시댁 어르신들께 따지듯 얘기를 해왔었는지 몸소 깨닫게 됐다.
“우리 인생에는 부모라는 역할만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남편에게 아내의 역할, 사랑하는 여자에게 남자로서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으니 모든 것을 다 누리려면 아이는 하나도 충분해”라고 결심하게 됐다.
신랑의 확신을 모른 체하고 둘째를 낳고, 셋째를 낳으면 내 결혼의 주인공은 계속해서 아이들이 될 것이고 커서 독립한 자녀를 보며 인생의 공허함을 느끼게 될 게 불 보듯 뻔한 일임을 나의 부모님이 가장 가까이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는 그동안 우리를 예쁘고 힘들게 키워주셨지만 덕분에 아빠와 꿈 같은 결혼 생활은 뒷전이었고, 우리는 그 사이 다 커버리고 스스로 살 길을 찾아 둥지를 떠나 있다. 이날부터 나와 남편을 위해 인테리어를 하고, 음식을 만들고 그럴 것이다. 아이가 왜 아빠가 더 좋으냐고 되물어본다면 엄마와 아빠가 사랑해서 널 낳았으니 넌 아빠 다음이라는 얘기도 해 줄 것이다.
김은서 리포터 yoyiii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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