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킷감청' 위헌 판단, 5년간 끌다 결론 없이 종결

헌재, 작년 9월 청구인 숨지자 심판절차 끝내 헌법재판소가 정보당국의 무제한 검열 소지가 있다는 비판을 받는 ‘패킷감청’ 기법의 위헌 여부를 5년 동안 가리지 않다 사건을 종결했다.

헌법소원을 청구한 당사자가 숨지고 없다는 이유에서다. 헌재가 국민의 기본권과 관련된 민감한 사건을 질질 끌다가 결론도 안 내고 종결한 데 대해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헌재, 5년간 시간 끌다 청구인 사망하자 ‘종료’ 선언

헌재는 5년 전 김모씨가 국가정보원의 패킷감청을 문제 삼아 통신비밀보호법 제2조7호, 제5조2항, 제6조에 대해 청구한 헌법소원사건 심판절차 종료를 25일 선언했다. 헌재는 “청구인은 헌재에서 사건 심판절차가 계속 중이던 2015년 9월 사망했는데, 청구인이 침해받았다고 주장하는 기본권인 통신의 비밀과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성질상 일신전속적인 것이어서 승계되거나 상속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 청구가 인용된다고 해서 청구인의 확정된 유죄판결에 대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지도 않는다”고 사건 종료 이유를 설명했다.

문제의 ‘패킷감청’ 논란이 헌재 심판대에 오른 것은 2011년 3월이다. 패킷감청이란 정보·수사기관이 인터넷 회선에서 오가는 내용을 중간에서 가로챈 뒤 수사 대상의 컴퓨터 화면과 똑같은 내용을 재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수사 대상자가 인터넷 전화를 사용하면 통화내용까지 파악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국가정보원 등이 마음만 먹으면 수사내용과 무관한 사생활 내용까지 엿볼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당시 고등학교 도덕교사였던 김모씨는 국정원이 2010년 12월부터 2011년 2월 사이 자신에 대한 패킷감청을 한 사실을 알았다. 그는 학생들에게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합의문 내용을 묻는 시험문제를 낸 게 화근이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김씨는 패킷감청의 근거가 된 통신비밀보호법이 통신비밀의 자유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을 침해한다고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패킷감청은 사실상 무제한적인 감청이 가능해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패킷 감청 위헌소지 많아

그러나 헌재는 패킷감청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지 않은 채 시간만 끌었다. 국회 국정감사 때마다 패킷감청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 지연 문제가 도마에 올랐지만 헌재는 “유념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법조계에서는 패킷감청에 대해 “범죄사실과 무관한 내용까지 수집할 수 있다”며 위헌성 견해가 적지 않았다. 아울러 수사 대상자뿐 아니라 같은 회선을 사용하는 다른 사용자의 정보까지 파악할 수 있어서 ‘감청 오·남용’ 가능성에 대한 비판도 상당했다. 하지만 헌재가 꿈쩍도 안 한 사이에 김씨는 암에 걸렸고 지난해 9월 세상을 떠났다.

일각에서 헌재가 국정원 등 정부의 눈치를 지나치게 살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이 사건의 헌법소원을 담당한 법무법인 동안의 이광철 변호사는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며 “5년씩이나 사건을 끈 것은 헌재가 자신의 임무를 방기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헌법적으로 중요쟁점을 담은 사건은 신청자가 사망해도 본안 판단을 한 경우가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헌재의 태도를 비판했다.

박현준·정선형 기자 hjunpar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