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2-26 18:58:17
기사수정 2016-02-27 13:20:43
‘차별금지법’ 10년… 아직도 차별 심한 장애인 영화관람
“그냥 맨 앞에서 보시면 돼요. 다 그렇게 보시던데요?”
전동휠체어를 타고 지난 24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찾은 최강민(41)씨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뇌병변 1급 장애인인 최씨가 미리 표를 끊어놓은 장애인석 안내를 요청하자 극장 직원이 스크린 앞 빈 공간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영화를 관람할 때는 탈부착이 가능한 장애인석으로 지정된 좌석을 떼어내고 그 자리에서 보도록 한 규정을 무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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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 1급 장애인 최강민씨가 24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 맨 앞좌석에서 스크린을 올려다보고 있다. |
최씨가 “돈을 내고 구매한 장애인 좌석을 왜 이용하지 못하냐”고 항의한 뒤에야 극장 측은 장애인 좌석을 떼낸 뒤 최씨 자리를 마련해줬다. 최씨는 “극장 직원이 대부분 아르바이트생이다 보니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이처럼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문화·예술활동의 차별금지 등을 담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10년이나 됐지만 가장 대중적 문화활동인 영화 관람조차 장애인에게는 문턱이 높다. 이 법에 따르면 스크린 기준 300석 이상인 영화관은 장애인이 문화·예술활동에 참여하도록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이날 기자가 동행한 최씨의 영화 관람 과정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었다. 영화관 건물 1층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3층까지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였다. 이어 3층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7, 8층 영화관으로 이동하는 구조인데,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주위에 물어 보니 옆 건물인 백화점 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한다고 했다. 최씨는 “백화점이 휴무이거나 영업시간이 아닌 아침, 밤 시간에 장애인은 영화보러 오지 말라는 셈”이라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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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 1급 장애인 최강민씨가 24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 건물 1층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안내판을 살피고 있다. 이 영화관 건물에는 휠체어 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엘리베이터가 없어 옆 백화점 건물을 통해 영화관으로 이동했다. |
백화점을 통하는 길도 최씨에게는 고역이었다.
그는 사람들로 붐비는 백화점 매장을 지나면서 묵직한 유리문을 힘겹게 밀어내는 일을 수차례 반복한 끝에 영화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잡은 자리도 맨 앞줄이어서 눈앞 가득 펼쳐진 스크린을 향해 고개를 젖히고 2시간가량 버텼다.
최씨는 자세가 불편한지 자주 몸을 뒤척였다. 하지만 화면에 집중하며 영화를 즐기는 모습은 여느 관객과 다를 바 없었다. 영화가 끝난 뒤 최씨는 “맨 앞좌석은 비장애인들도 꺼리는 자리인데 이조차도 장애인에게 내주지 않는 상영관이 있다”며 “대형 영화관들이라도 장애인 편의 제공에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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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 1급 장애인 최강민씨가 24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 내 장애인석에서 영화 상영을 기다리고 있다. |
최씨의 지적은 사실이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의 ‘2015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이행 실태 모니터링’에 따르면 전국 영화관 76곳을 조사한 결과 39.5%가 장애인석을 맨 앞쪽에 배치했다. 가운데에 배치한 곳은 3.9%, 분산 배치는 2.6%에 불과했다. 시청각 장애인이 겪는 차별은 더욱 심했다. 영화관 절반 이상이 한글자막·화면해설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고 제공해도 특정 영화와 날짜에 한정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시각장애 1급 김준형(25)씨는 “서울 시내에 정기적으로 화면해설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화관은 두 곳뿐이고 이조차도 한 달에 3일 정도”라며 “비장애인인 여자친구가 영화를 좋아해서 함께 하고 싶은데 나 때문에 그러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최근 CGV·메가박스·롯데시네마 등 영화사업자에 대해 시청각 장애인 4명을 원고로 세워 문화향유권 차별구제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이들은 소장에서 “리걸, AMC, 씨네마크 같은 미국 3대 영화관은 모두 폐쇄자막(보조기기를 통해 해당 이용자에게만 제공하는 자막), 화면해설 등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며 “발전된 기술을 장애인 배려에 활용해줬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글·사진=김승환 기자 hw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