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2-27 13:41:34
기사수정 2016-02-27 13:41:34
공천물갈이 대충돌
이 위원장과 김 대표는 견원지간(犬猿之間)이다. 그런 두 사람이 공교롭게도 여야의 20대 총선 ‘공천 칼잡이’로 나섰다. 둘은 한 때 새누리당에서 한 솥밥을 먹으면서도 앙숙이었다. 이제 여야로 나뉜 두 사람은 공천 물갈이로 충돌하고 있다. 4·13총선 승리를 위해 엄정한 잣대로 현역의원들에게 공천의 칼날을 날릴 태세다. 현역을 교체하는 칼춤의 경쟁에 돌입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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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새누리당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
그래서 요즘 두 사람의 입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위원장은 19대 국회의원을 사상 최악의 의원들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물갈이를 예고하고 있다. 그는 의정활동 저성과·비인기를 공천 기준으로 내세웠다. 그러면서 저성과 현역 의원을 ‘양반집 도련님’,‘월급쟁이’등로 비유하며 컷오프(공천배제)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나아가 모든 광역시와 도에서 1~3개의 지역구를 우선추천지역으로 선정해 전략공천을 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그는 26일 TK(대구·경북) 면접심사에서 “개혁한다고 청와대도 난리법석인데 너희들(현역의원들) 중 앞장 선 사람이 누가 있냐”고 집중적으로 따지며 TK물갈이를 대비했다.
이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컷오프에 대해 “모양은 그럴듯하지만 내용이 더 중요한 게 아니냐”며 “폼은 나게 잘랐는데 그동안 국정운영에 발목잡고 있던 친노핵심은 하나도 안 잘랐다”고 평가절하했다.
김 대표도 공천 물갈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1차 컷오프에서 문희상, 유인태 의원 등 친노 중진들이 대거 탈락했다. 2차 컷오프의 첫 타깃은 호남 민심 이반의 진앙지였던 광주의 강기정 의원(3선)이었다. 25일 강 의원의 지역구(광주 북갑)를 전략공천 대상으로 결정해 그를 공천에서 탈락시키겠다. 강 의원은 86운동권 출신으로 문재인 전 대표 시절 정책위의장을 지냈다.
광주를 방문한 김 대표는 이날 오전 광주시의회에서 2,3차 컷오프의 대상이 호남·운동권이 될 것이라고 선전포고했다. 그는 “낡은 과거와 과감하게 단절하겠다”며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을 존중하지만, 이를 이용해 기득권을 지키려는 과거 세력은 단호하게 끊어 내겠다”고 강조했다.
공천 물갈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 위원장과 김 대표의 악연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사람은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돕는 걸출한 경제 전문가였다. 당시 김종인 비대위원과 이한구 원내대표의 목표는 박 비대위원장 대통령 만들기로 같았다. 하지만 18대 대통령선거의 시대정신이었던 경제민주화를 놓고는 찬반으로 완전히 갈렸다. 김 비대위원은 경제민주화 전도사였던 반면 이 원내대표는 경제민주화 비판론자였다.
두 사람은 2012년 한해 동안 경제민주화를 놓고 공방을 거듭했다. 김 비대위원은 그해 7월3일 이 원내대표를 겨냥해 “재벌기업에 오래 종사해 그쪽의 이해를 대변하는 사람”이고 비판했다. 그러자 이 원내대표는 “도대체 (경제민주화가) 무슨 얘긴지 모르겠다. 그분(김 비대위원)이 말하는 경제민주화 내용이 무엇인지 제가 알기론 우리나라에 아무도 없다”고 비꼬았다.
이 원내대표는 그해 9월5일 예산당정회의에서 “정치판에서는 정체불명의 경제민주화니 포퓰리즘 경쟁을 하느라 정신이 없고 그래서 기업의 의욕이 떨어지고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다”고 재공격했다. 김 비대위원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인 것 같고 태어나서 그런 정치인은 처음 본다”며 “그런 정신상태로는 얘기할 수 없다.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맞받아쳤다.
두 사람간 대결로 당이 시끄럽자 심판관인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김 비대위원의 손을 들어줬다. 김 비대위원이 판정승을 거둔 것이다. 그해 10월11일 대통령 후보 중앙선대위원위가 구성됐는데 김 비대위원은 행복추진위원장을 맡았다. 하지만 이 원내대표는 선대위 의장단에서 제외됐다. 앞서 김 비대위원은 최경환 비서실장, 황우여 대표, 이한구 원내대표, 서병수 사무총장 등 당 지도부 사퇴를 촉구하며 당무를 나흘동안 거부하기도 했다.
남상훈 기자
nsh2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