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2-28 22:11:02
기사수정 2016-02-28 22:11:01
문제 어렵지 않아도 선지 문장에 ‘덫’ 조심… 끝까지 꼼꼼히 읽어야
학생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영역에서 많이 틀리는 문제는 어떤 유형일까. 이를 세밀하게 검토하면 아주 자세한 유형 분류가 가능해지겠지만, 이 글에서는 너무 자세히 들어가지 않고 아주 간단한 분류만으로 학생들이 어떤 문제 유형을 어렵게 느꼈는지 살펴보겠다.
하나는 지문이 어려운 경우다. 주로 독서영역의 과학이나 기술 지문, 문학 영역의 고전 시가나 고전 소설이다. 물론 다른 분야의 지문도 때로는 어렵게 나오기도 하지만, 최근 3개년의 기출문제 오답률을 보면 학생들은 대체로 위에서 언급한 분야의 지문을 어렵게 느낀 듯하다. 그런데 이런 유형을 잘 푸는 데는 무슨 특별한 왕도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반복학습을 통해 해당 분야에 익숙해지는 것 말고는 달리 길이 없다.
다른 하나는 선지가 까다로운 유형이다. 선지가 까다롭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선지에 ‘덫’이 있다는 얘기다. 출제자들이 깔아놓은 덫. 문제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선지의 문장이 교묘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학생들이 고도로 집중해 읽지 않으면 그 덫을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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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에서 학생들이 많이 틀리는 대부분 유형은 지문이 어렵다기보다 선지에 일종의 덫이 있는 문제 유형이다. 이를 극복하는 것은 집중력을 잃지 말고 지문뿐 아니라 선지도 엄밀하게 독해해 ‘덫’에 빠지지 않는 수밖에 없다. 사진은 지난해 6월 모의평가에서 서울의 한 고교에서 학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
물론 출제자들이 수험생들을 일부러 골탕먹이기 위해 그런 덫을 놓은 것은 아닐 터다. 난이도 조절을 위해서, 혹은 해당 문제의 특성상 그런 덫이 필요했던 것일 터다. 두 가지 기출 사례를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따져 보자.
최근 3개년 기출문제 중에서 오답률이 가장 높았던 문제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문법 문제였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틀린 것이 지문 자체가 아예 없는 문법 문제였다는 얘기다. 즉 지문이 아니라 선지가 까다로운 문제였다는 뜻이다.
2015학년도 수능의 B형 11번(문제1 참고)이 그 주인공이다. 오답률이 무려 70퍼센트에 육박했다.
문법을 조금만 공부한 학생들도 <보기>의 표준발음법 제8항의 내용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른바 음절의 끝소리 규칙이다. 우리말에서는 이 규칙을 지키기 위해 자음 탈락과 자음교체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 <보기>의 내용이다. 여기까지는 어렵지 않다. 문제는 선지다. 정답은 5번이었는데, 제일 많은 학생들이 3번을 정답으로 선택했다. ‘닦지’의 ‘ㄲ’이 ‘ㄱ’으로 바뀐 것을 자음탈락으로 오해한 것이리라. 하지만 이건 엄연히 교체이다. 그러므로 맞는 선지이다. 하지만 다른 선지가 모두 맞다는 오해를 하게 되면 어쩐지 손을 대기 좋게 생긴 선지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얼핏 보면 5번 선지가 맞는 것처럼 보인다. 어째서 그럴까. ‘밟는’의 ‘ㄼ’이 ‘ㅁ’으로 바뀌는 현상을 순차적으로 뜯어 보자. 우선 ‘ㄹ’이 탈락하고 그다음에 ‘ㅂ’이 ‘ㅁ’으로 교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5번 선지의 “㉠, ㉡이 모두 적용되었다”는 말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많은 학생들이 나머지 선지 중에서 정답을 골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3번 선지의 ‘ㄲ’이 ‘ㄱ’으로 바뀐 것이 자음탈락처럼 보일 수도 있었을 터다. 이것이 탈락인가 교체인가 하면서 고민하는 와중에 3번 선지를 택한 학생들이 많았던 듯하다.
하지만 5번 선지의 오류는 문장의 후반부가 아니라 전반부에 있었다. 즉 ‘밟는’을 발음할 때 자음탈락과 자음교체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유가 모두 ⓐ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점을 간파해야 했다. ‘ㄹ’이 탈락하는 현상은 음절의 끝소리 규칙을 지키기 위한 것이지만 ‘ㅂ’이 ‘ㅁ’으로 교체되는 것은 자음동화의 일종인 비음화 현상이기 때문이다.
비음화는 발음의 편의를 위해 발생하는 현상이다. 게다가 <보기>에서도 분명히 설명되어 있지만 ‘ㅂ’은 받침 발음으로 올 수 있는 자음이다. 4번 선지의 ‘읊기’가 ‘읍끼’로 발음될 때 ‘ㄹ’이 탈락하고 ‘ㅍ’이 ‘ㅂ’으로 교체되는 것과는 다른 현상이라는 뜻이다. ‘ㅍ’은 음절의 끝소리가 될 수 없으므로 ‘ㅂ’으로 바뀐 것이지만, ‘ㅂ’은 음절의 끝소리가 될 수 있으므로 ‘ㅂ’이 ‘ㅁ’으로 바뀐 것은 ‘받침 발음의 원칙’과는 상관없는 현상임을 간파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즉 5번 선지의 오류가 선지의 후반부가 아니라 전반부에 있다는 점을 간파했어야 했다. 바로 이것이 이 문제의 덫이었다.
다른 사례를 하나 더 들어 보자. 2015학년도 수능 A·B형의 42번 문제(문제2 참고)가 그 주인공이다. 오답률이 50% 정도였다. 현진건의 『무영탑』이 지문으로 제시되고 발문과 보기로 문항이 구성됐다. 정답은 5번이었는데, 앞에서 살펴본 문법 문제와 마찬가지로 오류가 문장의 후반부(서술어 부분)가 아니라 전반부(주어 부분)에 있었다. 선지에서 말하는 윗글, 즉 『무영탑』이 [자료 1]과 [자료 2]의 서사 모티프를 이어받은 것은 맞지만, ‘새로운 돌부처’ 형상에 석공의 얼굴이 새겨진 것은 틀린 내용이다. 지문을 꼼꼼히 읽은 학생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파악했을 만한 오류인데도 오답률이 50%가량이나 나왔다는 것은 선지를 읽을 때 오류를 문장의 후반부에서 찾는 무의식적인 버릇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밖에도 2015학년도 A형 35번, B형 45번, 2014학년도 A형 41번 등도 지문이 어렵다기보다 선지에 일종의 덫이 있는 문제 유형이다. 단 한 문제를 맞느냐 틀리느냐에 따라 등급이 나뉘고 하나의 등급 차이에 따라 당락이 갈리는 수능시험에서 이런 유형의 문제를 틀리면 좀 억울하다는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언제나 집중력을 잃지 않고 지문뿐만 아니라 선지도 엄밀하게 독해해 덫에 빠지지 않는 수밖에 없다.
김봉소 이감국어연구소 고문(스카이에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