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감정선 섞은 매력적 팜므파탈 기대하세요”

초연 한달여 앞둔 뮤지컬 ‘마타하리’ 연출가 제프 칼훈 ‘마타하리’는 올해 뮤지컬계 최고 관심작이다. ‘흥행 불패신화’로 알려진 제작사 EMK가 ‘해외 판매로 로열티를 받겠다’며 나선 첫 창작 도전이다. 세계 시장을 겨냥한 만큼 제작비가 막대하다. 한국이 100억원, 미국·영국에서 150억원을 투자한다. 미국 브로드웨이 인력도 대거 합류했다. ‘지킬 앤 하이드’의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하고, ‘뉴시스’의 제프 칼훈이 연출했다. 초연을 한 달여 앞두고 서울 중구의 카페에서 연출가 칼훈(56)을 만났다. 그는 ‘마타하리’ 제작 과정을 “한국과 미국 문화 사이의 춤 같다”고 말했다. 칼훈은 예술적 성실성이 강하고 진지했다.

“한국과 미국의 감성이 섞여 새롭고 신선해 보였으면 해요. 아직 해답은 없어요. 계속 찾는 중이에요. 아마 첫 공연을 몇 번 봐야 깨달을 것 같아요. 약속드릴 수 있는 건 ‘마타하리’가 섹시하고 감정선이 깊고 예술적이면서 재밌다는 거예요. 무대가 굉장히 커요. 시적이고 환상적이에요. 큰 스케일을 기대한다면 그건 충족될 겁니다.”

뮤지컬 ‘마타하리’를 연출하는 제프 칼훈은 “보통 연출은 프로듀서와 비슷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더라”라며 “연출가는 2차원의 내용물을 3차원으로 만들고, 관객이 자리에 딱 앉아서 눈으로 보는 모든 것들을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EMK 제공
마타하리는 음악홀 물랭루즈의 무희로 유럽 남성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1917년 독일 스파이 혐의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칼훈은 “마타하리는 힘든 유년기와 결혼생활을 겪은 데다 하인에게 딸이 독살되기까지 했다”며 “국제적 스타가 된 뒤 스파이로 활동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마타하리는 처음으로 여성이 권력을 가진 페미니스트 같다”며 “그 시대 싱글 여성으로서 이룬 업적을 상상해보면 뮤지컬 소재로서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밝혔다. ‘마타하리’에는 웬만한 한국 상업영화를 능가하는 제작비가 쓰인다. 제작비 얘기를 꺼내자 그는 “얘기하기 창피하다”며 겸연쩍어했다.

“가격표가 달리면 숫자로 기준을 매기기 시작하잖아요. 비싼 게 항상 질이 좋은 건 아니에요. 물론 ‘마타하리’는 그러길 바라지만요. 제작비 얘기는 조금 부담스러워요. 얼마가 들었든 좋은 공연을 보여주는 게 목표니까요.”

EMK의 꿈대로 ‘마타하리’가 세계에서 통할지 묻자 “이 일을 하면서 항상 느끼는 건 절대 확언하면 안 된단 점”이라며 조심스러워 했다.

“좋은 쇼라 해서 상업적으로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더라고요. 예술적이고 아름다운 공연인데 돈을 많이 못 벌 때가 있어요. 깊이나 완성도에 의문을 던질 만한데 막대한 매출을 올리기도 하고요. 전 그저 최선을 다하려 해요.”

칼훈은 이력이 특이하다. 그는 20대 초반 탭댄서로 무대에 섰다. 이후 배우를 거쳐 안무가로 성장했다. 1990년대 연출가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한 뒤 ‘올리버’ ‘뉴시스’ 등을 만들었다. 프로듀서로도 일했다. 한국과 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친구인 작곡가 와일드 혼의 추천으로 2012년 준비작업 단계에서 합류했다.

“한국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어요. 북한 밑에 있다는 것만 알았죠.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 여기 있었고, 북한에서 핵실험을 할 때도 있었어요. 이번에도 북한에서 장거리 미사일(로켓)을 쐈잖아요. 김정은이 제가 언제 한국에 오는지 스케줄을 확인하는 것 같아요. 하하.”

그는 10시에 연습실에 도착해 저녁까지 작업에 매진한다. 숙소로 돌아가면 밤 12시쯤까지 수정할 부분을 점검한다. 하루를 온전히 ‘마타하리’에 바친다. 미국에서는 여가를 중시하지 않느냐 묻자 그는 “극장 사업에서는 그럴 수 없다”며 “뮤지컬은 블루칼라 직업이라 이 일을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처음 접하는 한국 배우와의 작업은 색달랐다.

“한국에는 배우조합이 없더라고요. 연습 분위기는 편하고 유동적인데, 배우 스스로는 자신에게 더 엄격한 것 같아요. 필요하면 연습이 끝나도 언제까지든 남아 땀 흘려요. 오디션 때도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다들 진지하고 준비를 많이 해왔어요.”

배우들이 옛 뮤지컬 작품을 잘 모르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는 “특정 이름을 얘기하며 ‘그렇게 해 달라’고 분위기를 잡으려 해도 아무 의미가 없더라”라고 말했다.

“전 내가 하는 예술의 역사를 아는 게 중요하다고 배웠습니다. 미국에서 공연하고 싶은 젊은이라면 특정 배우나 공연을 말하면 조명, 세트를 누가 했는지까지 알고 있어야 한다고 가르침 받았죠.”

짧은 한국 경험이지만, 국내 공연문화를 향한 그의 눈은 예리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보통 배우들을 보러 극장에 오더라”라고 운을 뗐다.

“저는 뮤지컬을 만드는 사람이죠. 배우를 돋보이게 하는 직업은 아니잖아요. ‘마타하리’에는 훌륭한 배우들이 많이 섭외됐지만, 배우가 누구든 그 자체로 보고 싶은 공연이 됐으면 해요. 굉장히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작품이기에 배우보다 공연 자체가 스타가 되길 원해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