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가계 짓누르는 '전·월세 폭등' 반영 못하는 물가

주거비 비중 미국의 3분의 1 / 자가는 빠져… 통계 왜곡 논란
최근 수년간 폭등한 주거비는 서민 가계를 가장 무겁게 짓누르는 생활비용이다. 그런데도 소비자물가를 산정하는 데 주거비의 반영폭(가중치)은 미국, 일본, 캐나다 등 주요국에 비해 현저히 작은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3분의 1, 일본의 2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들 나라와 달리 소비자물가 산정에서 자가주거비를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가에 반영되는 전·월세도 ‘전세→월세(반전세) 전환’이 급증하면서 주거비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체감물가와의 괴리는 점점 심해지고 물가통계에 대한 믿음은 약해지고 있다. 통화정책 심장부인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집세 상승 과소평가로 물가관리 정책이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29일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 산정에서 주거비 가중치는 전체 가중치 1000 중 92.8(전세 62.0, 월세 30.8)로 비중이 9.28%이다. 이에 비해 자가주거비를 반영하는 미국, 일본, 캐나다는 주거비 비중이 훨씬 높다. 전체 가중치를 1000으로 환산했을 때 미국은 315(자가주거비 243.4, 월세 71.6)로 31.5%, 캐나다는 222.3(자가주거비 163.8, 월세 58.5)으로 22.2%를 차지한다. 일본은 186.5(자가주거비 155.8, 월세 30.7)로 18.6%다. 이들 나라는 자가주거비를 해당 주택의 임대료 시세 등을 기준으로 물가에 반영하는 반면 한국은 이를 제외한다.

통계청 관계자는 “자가주거비를 반영할 경우 가중치가 너무 커져서 다른 품목의 변화를 삼켜버리는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거꾸로 가중치가 너무 작으면 물가에 주거비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통계청은 “자가주거비를 반영한 통계도 보조지표로 쓰고 있는데 주 지표와 별 차이는 없다”고 말했다.

그렇더라도 차이는 분명하다. 최근 4∼5년간 전·월세만 반영한 소비자물가(주요지표)와 자가주거비까지 포함한 물가(보조지표)를 비교해보면 자가주거비 반영 물가상승률이 조금씩 더 높게 나오는 흐름이 이어진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2→1.3→1.3→0.7%인데 자가주거비를 포함하면 2.5→1.6→1.5→1.1%로 0.2∼0.4%포인트 높게 나온다. 특히 지난해는 두 통계가 0%대와 1%대로 갈리는, 작지 않은 차이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가주거비를 반영하지 않는 나라가 한국만은 아니다. “유럽 국가들을 비롯해 자가주거비를 반영하지 않는 나라가 더 많다”(통계청 관계자)고 한다. 그렇다고 주거비가 치솟는 한국 상황에서 지금의 물가 산정 방식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지난 1월 한은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한 금통위원은 “물가에서 제일 중요한 품목 중 하나가 집세인데 2015년에 아파트 전세 가격이 6% 가까이 올랐으나 소비자물가지수의 집세 기준으로는 2.5% 상승에 그쳤다”며 물가 산정방식에 의문을 나타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통계청이 전국 주요 도시에서 매월 489개 상품과 서비스 품목의 가격을 조사해 산출한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