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2-29 21:47:56
기사수정 2016-02-29 21:48:40
성장지상주의에 빠진 사회
인문학이 제 역할 못한 책임 커
존재가치와 위상 찾기 노력 활발
머리 맞댄 시대의 지성과 석학
우리문화 성장가능성 보여줘
우리나라 최대 포털사이트 업체인 네이버그룹의 네이버문화재단이 기업이익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야심 차게 기획하고 지원한 대중 공개 강연 및 토론마당 열린 연단 ‘문화의 안과 밖’이 학계와 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학자와 문학예술가 및 지성을 총동원한 가운데 3년째(2014년 1월 시작)를 맞았다. 2014년 ‘주제 강연’에 이어 2015년 ‘고전 강연’ 등 현재 100여 주제를 소화했으며, 올해는 ‘윤리 강연’을 주제로 영역과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어 기대된다. 우리 사회는 지난 50, 60년 동안 소위 ‘압축 성장’ ‘압축 진행된 근대화’로 표현되는 성과와 함께 그 부산물로 여러 가지 부정적 모습을 안고 있다.
열린 연단 측은 ‘우리 문화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토론하는 자리’로서 사회 상황의 ‘전체적인 지표로서의 문화’에 대한 반성과 검토를 하는 자리라고 취지를 밝히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현실문제 해결에 급급한 나머지 문화를 전체적으로 되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했고, 좀 더 넓고 깊은 관점에서 우리 문화의 위상과 존재 방식을 반성하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대학에서의 인문학과 폐지와 기술·직업학과 신설은 기술사회를 지향하는 데 따른 불가피한 추세라고는 하지만 인문학의 직무유기를 반성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있었던 게 사실이다. 열린 연단 기획위원의 면면을 보면 김우창 위원장을 비롯해 유종호 오세정 이승환 김상환 박명림 문광훈 최장집 등이 참여했으며, 이밖에 주제에 따라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과 석학을 모심으로써 최소한 세계적 지평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해주었다. 열린 연단을 통해 본 한국의 인문학은 여전히 1960, 70년대처럼 문학을 중심으로 이끌어지고 있으며, 구미문학과 철학적 잣대에 의해 재단되고 비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문학의 부정적인 측면이 아니라 그나마도 문학만이 현실과 부단히 대화하면서 시대적 리얼리티를 확보해왔음을 증명한다.
60년대 중반부터 한국근대사의 흐름을 이끌어 온 지성그룹은 소위 ‘문지파’(문학과 지성 중심 그룹)와 ‘창비파’(창작과 비평 중심 그룹)였다. 그런데 이번 열린 연단은 문지파가 중심이 됐다는 점에서 생명력을 보여줬다. 아마도 이념적으로 마르크시즘에 가까웠던 ‘창비파’가 1990년 공산주의 붕괴와 더불어 사유의 토양을 잃어버린 데 따른 것은 아닌지라고 생각됐다. 일제 식민치하에서 근대를 맞은 한국은 처음부터 문학중심으로 인문학을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문학운동을 계기로 시작된 ‘참여와 순수’ 논쟁은 지금도 ‘독재-민주’로 변형된 채 현재진행형이다. 현재 한국문화는 부분적으로 근대성을 달성하기는 했지만 식민지적 성격이 내재된 근대화였으며, 설상가상으로 사대·식민주의의 전통은 마르크시즘의 온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우리 고유의 형식(탈춤이나 민속마당놀이)과 민중문화를 가지고 세계적 지평에 오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난 2년간 열린 연단을 지켜본 필자로서는 여러 감회에 젖지만 한국의 근대문화가 주로 문학에 의해 견인됐다고 하는 것은 역사·사회적 주체의식의 형성이라는 점에서 문화적 약점과 부족함을 드러낸다고 생각된다. 한 나라의 문화가 주체적인 역사의식과 철학이 없는 가운데 수행된 것이라면 한계를 노출할 수밖에 없다. 한국문학이 노벨상을 타지 못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열린 연단에서 몇몇 예리함과 탁월성을 보인 경우도 없지 않았다. 현대 서양철학을 가장 탁월하게 소화했다고 평가받는 김상환은 ‘철학과 삶(사유란 무엇인가)’에서 ‘과학은 사유하지 않는다’는 하이데거의 명제를 소개하면서 ‘동아시아적(유가적) 사유’의 한 예로 주역의 ‘간(艮)’괘의 멈출 ‘지(止)’에 대한 현대석 해석을 선보였다. 김 교수는 ‘시경(詩經)’에 나오는 ‘쥐 노래’(相鼠: 시경 ‘용풍·?風’에 나옴)를 통해 동서 문명의 차이를 논했다. 시간을 초월하려는 서양과 때에 맞추려는 시중(時中)과 중용(中庸)의 동양철학을 비교하는 것이었다. 동양은 신체 내적인 것을 중시함으로써 ‘체(體)’와 연결되는 ‘예(禮)’를 통한 수신(修身)에서 문명적 특성이 잘 드러난다고 해석했다.
문학평론가 이남희는 김소월의 시를 “의미를 통해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앞장서서 전달하는 정서이며, 언어 자체가 가진 자질이 의미의 일부분과 상호작용하면서 특별한 미적 공간을 만드는 것이고, ‘의미이기도 하고 의미가 아니기도 한’, 느낄 수는 있지만 좀처럼 설명되기 어려운 아름다움과 외로움과 슬픔은 바로 우리 내면에 숨은 존재의 일부다”라고 말한 점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한편 물리학자 오세정은 ‘과학과 문화(문화에 있어서의 과학의 위상)’에서 과학사회로 변해가는 현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과학정신을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제하고, 과학지식보다는 과학지식이 객관적으로 얻어지는 과정과 사고방식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과학은 ‘전문가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풍토를 지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우창, 유종호, 최장집 등 원로들이 강연과 토론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적절하게 질문과 보충을 섞어가면서 좌중을 이끌어 가는 모습에서 한국문화의 성장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들의 동서고전을 넘나드는 힘은 인문학적 축적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박정진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