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 처벌·보호 경계에 선 소년범들… '상처' 보듬는다

'6호처분 수탁기관' 살레시오 청소년센터 가보니 구석진 도로에서 내리자 한 편으로 언덕길이 뻗어 있다. 시멘트로 바닥을 채운 낡은 정문에 ‘살레시오 청소년센터’라는 간판이 내걸렸다. 1979년 살레시오 기숙사로 개원했다가 지금은 ‘6호 처분’ 수탁기관 역할을 한다. 입구 오른쪽에 기숙사, 정면에 교사(校舍)가 있다. 입구를 따라가다 보면 얼핏 불상으로 착각할 만한 둥글하고 아담한 성모상이 손님을 맞는다. 방황하는 아이들을 위해 유명 작가가 한국 어머니의 전형적 모습을 본떠 만든 성모상이다. 성모상 주변에는 도자기가 늘어서 있다. 아이들이 소원을 새겨 직접 구운 작품들이다.

비행청소년을 교화하는 ‘6호 처분’ 시설인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살레시오 청소년센터에 입소한 학생들이 도예작업을 하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6호 처분’ 받아 오는 아이들

현행법상 만 12∼18살의 청소년이 잘못을 저질러 법원에 가면 여러 처분이 기다린다. 1∼5호 처분을 받으면 대체로 집으로 돌아간다. 7호 처분을 받으면 소년의료보호시설로, 8∼10호 처분을 받으면 소년원으로 가야 한다. 6호 처분은 처벌과 보호의 ‘경계선’이다. 집도, 소년원도 아닌 사설기관에서 돌봄을 받는 것이다.

기자가 지난 15일 찾은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살레시오 청소년센터도 그런 곳 중 하나다. 6호 처분을 받은 청소년 100여명이 거주한다. 6개월간 머무는 게 원칙이지만 상황에 따라 그 이상 머물기도 한다. 아이들은 학교 공부를 하거나 도자기 제조, 조각 등을 배우며 일종의 ‘치유’를 경험한다.

“2∼3개월이면 그럴듯한 작품 하나씩 내놓을 수 있게 되죠.” 센터 관계자의 귀띔이 빈말 같지 않다. 한 아이가 나무를 깎아 만드는 조각을 보니 제법 그럴듯하다. 아이는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벌써 이 정도로 만든다”고 자랑했다. 조각은 대부분 동물이나 귀여운 애니메이션 캐릭터다. 도자기를 만드는 아이들은 몇 달 뒤 전시회를 열 계획이란다.

센터에 있는 아이들을 ‘문제아’란 단어 딱 하나로 규정하긴 어렵다. 현이(18·가명)는 정신지체장애 3급이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지만 지능이 약간 모자라 범죄에 쉽게 노출된다. 나쁜 짓을 하는 아이들이 “망을 보라”고 하면 별 생각 없이 따른다. 가게에 갖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폐쇄회로(CC)TV가 있는데도 그냥 가져간다. 도덕 관념 자체가 희박한 것이다.

이날 만난 현이는 센터 건물 곳곳에 있는 쓰레기를 치우고 다녔다. 센터장 백준식(54) 수사는 “우울증이나 분노조절장애 등을 앓는 아이들만 별도의 치료시설에 들어갈 수 있어 현이처럼 그냥 지능이 모자란 아이들은 일반 시설에 머물러야 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결국 소년원에 들어가기도…

‘아이들이 바른 길로 갔으면’ 하는 백 수사의 바람과 달리 매사가 뜻대로만 되는 건 아니다. 비행을 저질러 다시 센터를 찾는 아이도 있고, 죄질이 나빠 6호 대신 8∼10호 처분을 받고 소년원에 보내지는 아이도 있다.

민수(가명)는 결국 얼마 전에 소년원에 들어갔다. 백 수사에게 “내 사진을 보내 달라”고 짧은 편지를 보내왔다. 사진 속 민수는 활짝 웃고 있었다. 센터에 있을 때 체육대회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민수는 백 수사에게 보낸 편지에 ‘반성하고 있다’고 적었으나 이번 소년원행이 마지막이 될지는 미지수다. 민수는 어릴 적에 버려졌다. 백 수사는 “아기 시절 사진부터 청소년이 된 지금까지 민수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다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준이(18·가명)는 잘 풀린 경우다. 얼마 전에 첫 월급을 탔다며 아이스크림 100개를 사들고 센터를 찾았다. 직업학교에 들어가 기계 관련 자격증을 딴 뒤 공장에 취직했다. 갓난아기 때 입양된 준이는 사춘기 시절 우연히 이를 알게 된 뒤부터 엇나갔다. 오토바이 무면허 운전을 하다 단속돼 센터로 왔다. 지금은 양부모와의 관계도 회복됐다.

“철없는 아이들을 돌보다 화가 날 때도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백 수사는 “체벌을 하면 아이들에게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반항심만 남지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센터에서는 체벌 대신 생산적 벌을 내린다. 교육용 만화책을 읽게 하거나, 설거지를 하도록 한다. 백 수사의 사무실에는 곳곳에 만화책이 있었다. 살레시오회 창립자인 돈 보스코 신부는 ‘청소년들은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랑받기에 충분하다’고 가르쳤다.

◆“아이 눈에 맞춰 사랑과 관심 기울여야”

백 수사는 다리가 불편하다. 중학교 1학년 때 갑작스러운 하반신 마비로 뛰는 등 운동은 할 수 없게 됐다. 고교를 졸업하고 인천의 한 공장에 취직했다.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한 그는 공장에서 일하는 청소년들을 상대로 야학을 운영하다 지인 소개로 살레시오회를 알게 됐다. 1990년 5월부터 석달간 살레시오회에 있으며 입회를 결심했다.

백준식 센터장
백 수사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아이의 눈에 맞는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모가 관심을 기울인다며 아이에게 이것저것 시키지만 실은 부모가 좋아하는 일일 뿐이지, 아이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부모의 꾸중에 아이가 억지로 학원을 가고 공부를 하지만 방황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백 수사는 “사랑을 받아 본 아이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현준·정선형 기자 linea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