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스토리] 역대 정부부처·권력기관 최장수 수장은

권력기관 수장 '복심형' 총애… '관리형' 김관진 3대 정권서 롱런

대한민국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행정수반으로서 행정부의 최고의사결정권을 가진다. 하지만 모든 일을 혼자 결정할 수는 없다. 청와대 참모와 함께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부처 장관), 주요 기관장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총리·장관·기관장은 대통령 조언자 역할도 하지만 청와대 참모와는 달리 대통령 의사를 국정에 관철시키는 지휘관으로서의 막중한 책무를 지닌다. 대통령 권한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만큼 이에 따른 책임의 상당 부분을 떠안는 건 당연하다. 장수 총리·장관·주요 기관장은 한국의 엄혹한 정치 상황에서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면서 자기 관리에도 뛰어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일보는 전문가들 조언에 따라 약 1050명의 역대 총리·장관·5대 주요 기관장(감사원장,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을 전문가형, 관리자형, 측근형, 정치가형으로 분류했다. 측근형은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부터 함께 근무하는 등의 인연이 있거나 대선캠프 시절부터 합류한 경우로 국한했다.

 

 

◆전문가형…남덕우·진대제 등 학계·재계 출신 많아

 

전문가형은 주로 학계나 재계의 해당 분야 전문가가 발탁된 인물들이다. 최장수 부처 수장 중에는 남덕우 전 재무부 장관(1794일)이 대표적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평가단 회의에서 소신발언을 하던 남덕우 교수를 보고 “그럼 직접 맡아보라”며 파격 발탁한 건 유명한 일화다. 박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 경제대통령은 남덕우”라고 말할 정도로 그를 각별히 신임했다고 한다.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1120일)은 미래창조과학부 역대 최장수 장관이다. 그는 장관에 임명되기 전 삼성전자 대표를 지낸 경력을 살려 노무현정부에서 신성장동력 사업인 정보통신 분야를 키우는 임무를 맡았다. 이시원 경상대 교수(행정학과)는 “김대중·노무현정부는 정보통신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컸다”며 “삼성에서 근무한 진 전 장관이 전문적 식견을 발휘하도록 노무현정부가 진 전 장관에게 이 부분을 전적으로 맡겼다”고 설명했다.

 

장하진 전 여성가족부 장관(1151일)은 충남대 교수를 거쳐 한국여성연구소장, 한국여성연구회 공동대표 등을 역임한 학계의 여성문제 전문가다.

 

 

◆관리자형…김황식·김관진 등 자기 색깔 안 드러내

 

관리자형은 자기 색깔을 드러내기를 최대한 자제하며 방대한 조직을 관리하는 데 매진하는 유형이다. 이창길 세종대 교수(행정학과)는 “조직 규모가 크고, 일선기관과 지방기관이 많을 경우 조직관리 능력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황식 전 총리(880일)는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최장수 총리다. 2008년 감사원장에 취임한 이후 2010년 10월 총리에 발탁됐다. 호남 출신인 그는 영남 정권인 이명박정부 총리 자리에 올라 각종 의혹으로 흔들리던 정권 말기 국정을 비교적 잘 관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김 총리를 임명한 데는 감사원장 경력이 크게 작용했다. 감사를 하던 사람으로서 거꾸로 감사를 받는 자리에 간다면 더 큰 경각심을 가지고 일을 잘할 것이라 생각했고 이후 정부를 마무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그의 조직관리 능력을 높이 산 것이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1304일)도 관리자형으로 분류된다. 정권 성격이 뚜렷하게 다른 노무현정부(합참의장)와 이명박정부(국방부장관), 박근혜정부(국방부장관 및 안보실장)를 거치면서도 부침 없이 군과 국가안보의 최고 요직을 유지하는 처세술을 발휘하고 있다.

 

양욱 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김 전 장관을 군 조직을 우선시하는 인물로 평가하며 “다른 장관들과 달리 자신의 정치나 정책을 하려고 하지 않고, 정부와 보조를 잘 맞췄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황교안 총리는 1987년 이후 최장수 법무부 장관이다. 

 

 

◆측근형… 신직수·원세훈 등 대통령의 복심들

 

측근형은 주로 대통령의 복심(腹心)이다. 이들이 국정원, 검찰, 경찰, 국세청이라는 소위 4대 권력기관장에 주로 집중돼 있는 이유다. 주창범 동국대 교수(행정학과)는 “검찰, 국정원 같은 권력기관들은 대통령과 정치적 운명을 함께해야 한다”고 했다.

 

역대 최장수 수장의 기록을 가진 신직수 전 검찰총장(2736일·법무부 장관, 중앙정보부장 역임)은 군으로 연결된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2293일)과 박 전 대통령을 이어준 것도 군이다. 5·16 군사쿠데타에 가담한 김 전 부장은 1963년 남산(당시 중정 국내담당 기관 소재지)으로 불리던 중정부장에 임명돼 각종 정치사건을 처리하며 1972년 유신체제 출범에도 관여했다. 이후 미국에 망명한 뒤 반 박정희 활동을 벌이다 프랑스에서 사라졌다.

 

1987년 이후 최장수 국정원 수장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1499일)은 이 전 대통령의 서울시 인맥을 뜻하는 소위 S라인의 대표 인사다. 김호균 전남대 교수(행정학과)는 “이 전 대통령과 원 전 원장은 둘도 없는 친밀한 관계”라며 “권력기관장에는 충성도가 높은 사람을 기용하고, 한 번 쓰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바꾸지 않는다”고 원 전 원장의 장수비결을 설명했다.

 

 

 

◆정치가형…맹형규·전재희 등 국회의원 출신

 

정치가형은 주로 선출직인 국회의원을 거쳐 입각한 경우다. 정치적 소신과 정무적 감각이 있고, 국회와도 대체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특징이 있다.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이런 유형의 장관은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과 가까워 부처의 오랜 숙원사업들을 정치적인 힘을 이용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87년 이후 최장수 부처 수장인 지낸 맹형규 전 행정안전부 장관(1062일)이 대표적이다. 언론인 출신으로 15·16·17대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정치적 수완이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는다.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 꾸준히 요구했던 근속승진 인원 상한선을 폐지하고 기능 공무원직을 일반직으로 통합하는 등 조직의 오랜 숙원사업을 해결했다. 1987년 이후 부처 장수 수장인 전재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754일)도 한나라당 소속으로 16·17·18대 국회의원을 지낸 뒤 2008년 장관 자리에 올랐다.

 

정치적 수완만 있는 인물은 조직 수장으로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정치적 수완이 좋아도 해당 조직에 대한 전문성과 조직관리 능력이 없다면 문제가 된다”며 “정책능력과 조직관리 능력, 헌정질서에 대한 이해를 갖추고 여기에 정치적 수완이 더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