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와 폭력의 '안쪽 세상'… 소년, 위선에 저항하다

‘소년 파르티잔’

'상징’과 ‘비유’를 적절히 능숙하게 구사하는 연출력이 놀랍다. 독재와 폭력, 세상의 위선을 드러내는 어른들을 위한 우화다.

아리엔 클레이만 감독의 새영화 ‘소년 파르티잔’은 세상의 모든 추한 것들로부터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내겠다는 목적 아래 따로 모여 사는 15명의 아이와 부인들, 그리고 이 공동체를 이끄는 유일한 성인남자 그레고리(뱅상 카셀)의 세계를 그린다.

<<사진 = ‘소년 파르티잔’은 독재와 폭력, 세상의 위선을 드러내는 어른들을 위한 우화다. ‘안쪽세상’에서 그들만의 행동지침에 따라 살아간다는 충격적인 설정과 아름다운 비주얼, 친숙하면서도 몽환적인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조화를 이뤄 독특한 기운을 발산한다.>>
카리스마 리더 그레고리는 지금보다 나은 삶을 위해, 울타리 안 그들만이 사는 세상을 만들었다. 이 안쪽 세상에는 지켜야 할 행동지침이 있다. 종종 바깥세상에 나가 임무를 수행하는 아이들은 안쪽세상에 다시 들어올 때면 반드시 자물쇠를 채워야 한다. 어른이자 지도자인 그레고리가 하는 말에는 무조건 따라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아이들은 안쪽세상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교육받으며 자라난다. 형형색색의 풍선을 매달아놓고 주문하는 색깔별로 쏘아 맞히는 사격 연습을 하고, 사람을 상대로 실전 훈련을 되풀이한다. 실력이 쌓이면 바깥에 나아가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고 복귀한다.

알록달록 천연색으로 채워진 그들이 사는 세상은 어둡게 그늘진 바깥세상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더욱 살기 좋은 곳으로 비쳐지는 것이다.

그레고리는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아이들을 뽑는 ‘팝스타 선정’ 시간을 운영한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청부살인인 줄도 모르고 척척 해내고 돌아온 소년 알렉산더(제레미 샤브리엘)와 소녀 아리아나는 노래방 기계를 바라보며 침착하게 가사를 따라 부른다. 페이스 페인팅을 한 천진난만한 얼굴이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들이 부르는 노래(The Hardest Thing To Do)는 실제 영국 일렉트로닉 밴드 메트로노미의 히트 곡으로, “쉿! 조용히 있어. 때로는 진실을 말하는 게 제일 힘든 일 같아. 진실을 말하는 것, 그거야말로 가장 하기 힘든 일이지”라는 가사가 마치 안쪽세상을 빗대듯 화면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영화는 11살의 알렉산더가 스스로 생각할 줄 알게 되면서, 이 소년의 정서적 관점을 따라 이야기를 풀어간다. 관객들은 자연스레 순차적으로 그레고리를 향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 공동체 안에서의 편안함, 바깥세상과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 깨달으며 혼란스러워하는 알렉산더의 성장 과정을 함께 여행하게 된다.

어느날 그레고리는 바깥세상으로부터 이곳에서 살기를 원하는 리오 가족을 데려온다. 바깥세상을 경험해 본 리오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깨어 있는 아이다. 따라서 안쪽세상의 규칙에 쉽사리 순응하지 않는다.

그레고리는 순조로운 ‘통치’를 위해 말을 듣지 않는 리오를 닭장 속에 가두고 어느 누구도 이 아이와 말을 섞지 말라고 명령한다. 이를 숨죽이며 지켜보는 안쪽세상 아이들의 얼굴에는 어느새 선글라스가 씌워져 있다. 맹목적으로 길들여져 한 가지만 생각하고 따르는 모습을 꼬집는 장면이다. 어른에게 빼앗기고 뒤틀린 아이들의 순수함은 곧 권력에 짓눌리고 정보를 차단당한 국민들의 무지를 뜻한다. 영화는 아이들이 어른에게서 어떻게 이기심과 증오심을 배우는지를 그다지 어렵지 않게 입증해보인다.

그레고리는 리오가 지닌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미친 짓, 이상한 것’으로 몰아붙이는 독재적 방법을 택하지만, 이는 그동안 자신을 가장 충실하게 따르던 알렉산더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쳐, 변화의 단초를 제공하는 구실을 한다. 알렉산더가 오히려 그레고리 ‘체제’의 틈을 엿보고 허점을 찾게 되는 계기로 작용하는 것이다.

앞서 알렉산더는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던 길에, 선물로 받은 초콜릿을 처음 맛보면서 새로운 세계(문명과 문화)를 접한 바 있다.

가장 모범적으로 그레고리의 규칙을 지킨 소년 파르티잔 알렉산더. 순수와 냉혹, 두 가지 모두를 담고 있는 그의 시선에 관객은 압도당하고 만다. 엔딩 장면에서 제레미 샤브리엘이 보여주는 ‘응시’는 그 어떤 대사보다도 깊은 여운을 남기며 객석의 마음을 앗아간다.

아이들의 생일을 챙겨주는가 하면 자신의 말을 거역하는 아이를 가두며 자상함과 냉정함을 오가는 그레고리 역은 ‘블랙 스완’ ‘미녀와 야수’ 등으로 유명한 뱅상 카셀이 맡아 설득력을 더한다. 그는 세자르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