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자료제공 거부···알파고 대국은 불공정"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 "이세돌-알파고 정보 불균형 심각"
알파고, 국내 인터넷 바둑 사이트에서 훈련 의혹도 제기
"축구를 하는 데 A팀은 B팀을 훤히 다 알고 있고, B팀은 A팀을 전혀 몰라요. 공정한 경기가 될까요?"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세계 최고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가 펼치는 '세기의 대국'이 점점 불편하게 느껴진다.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제2국에서 이세돌 9단이 돌을 올려 둔 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프로기사 9단인 양 사무총장은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에서 심각한 공정성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11일 "알파고는 정체를 철저히 숨기고 있지만, 이미 공개된 이세돌 9단의 모든 기보를 확보하고 있다"며 "이세돌 9단은 자신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아는 상대와 싸워야 한다. 이는 페어플레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알파고의 개발자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양자가 경기 소감을 밝히고 있다.
이세돌 9단은 지난 9·10일 알파고와 두 차례 대국해 모두 불계패했다. 아직 세 판이 더 남았지만, 바둑 최강자가 인공지능과 처음 대결해 2연패 한 것은 충격적인 결과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는 신화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알파고의 상대로 이세돌 9단을 선택한 이유로 "세계 최정상에서 10년 이상 자리를 지킨 이세돌과 붙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세돌 9단은 10년 이상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했기 때문에 최근 부상한 젊은 기사보다 더 많은 기보가 공개돼 있다.

반면 알파고는 3천만 건의 기보를 공부하고, 스스로 한 달에 100만 번의 대국을 소화했다. 외부에 자신의 실력을 공개할 일이 없었다.

딥마인드는 개발자의 계정이라고 밝혔지만, 한국의 인터넷 바둑 사이트에서 한국 고수들과 연습 바둑을 두던 'deepmind' 계정 시용자가 알파고라는 추정도 바둑계에서 나온다.

한국기원은 이번 대국에 앞서 알파고에 관한 정보를 더 알아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하진 국제바둑연맹(IGF) 사무국장을 통해 딥마인드에 알파고 관련 정보를 요청하기도 했다.

알파고의 연습 기보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알파고가 다른 한국 프로기사와 연습 대국을 해보자고도 제안했다.

한국기원이 공개서한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구글 딥마인드 담당자는 구두로 "안 된다"는 뜻만 전달했다.

양 사무총장은 "공식 문서로 요청하지 않은 것은 안타깝다"면서 당시 한국기원은 이세돌 9단이 이길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고, 이번 이벤트가 바둑 부흥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 딥마인드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던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딥마인드가 알파고의 기보를 전혀 공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딥마인드는 지난 1월 '네이처'에 알파고 논문을 실으면서 유럽챔피언 판후이 2단과 알파고의 5번기 기보를 공개했다.

그러나 이는 이세돌 9단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판후이 2단의 실력은 이세돌 9단과 상대가 안 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기보는 이세돌 9단이 알파고의 실력을 경시하는 계기가 됐다.

양 사무총장은 "꼭 이겨야 한다면 자신을 감추는 게 전략이 될 수는 있다. 이기는 게 목적이라면 판후이 2단과 알파고의 바둑을 보여주는 것도 방심하게 만들려는 속임수 작전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의심했다.

양 사무총장은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이 이런 불공정 문제를 많이 제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날 아침에도 IT 전문가들의 항의성 전화를 수차례 받았다고 밝혔다.

바둑계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특히 프로기사들은 대국 방식 자체를 문제 삼기를 꺼린다.

이에 대해 양 사무총장은 "바둑 기사는 승부사다. 지고서 변명하기를 싫어한다. 자신이 약해서, 자신이 잘못해서 졌다고 인정하는 것이 기사의 미덕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세돌 9단도 승부사로서 이번 대국의 결과를 승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바둑을 대표하는 한국기원은 문제점이 있으면 지적하고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고 양 사무총장은 강조했다.

그는 "구글 딥마인드에 몇 가지 궁금한 점을 물어보려고 한다"며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는 없다. 질의를 할지, 무엇을 질의할지,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할지 등을 좀더 논의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