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A 직접 가입해 보니…모든 절차 밟는데 꼬박 1시간 걸려

증권사 일임형 '모델 포트폴리오' 상품 설명 미흡한 느낌
"고객님이 첫 고객이셔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출시일인 14일 연합뉴스 취재진이 대형 은행과 증권사 지점 한 곳씩을 찾아가 직접 ISA에 가입해 봤다.

'만능 재테크 통장'으로 ISA가 큰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가입하는 데만 한 시간가량 걸리는 등 판매 첫날이라 그런지 판매과정 곳곳에서 미비점이 눈에 띄었다.

◇ 증권사 창구 가보니…"전문용어로 가득 찬 설명서, 우려되는 묻지마 투자"

영업 시작과 동시에 한 대형 증권사 지점 문을 열고 들어가 1번 번호표를 뽑았다.

ISA에 가입하겠다고 하자 먼저 투자 성향을 가리는 투자정보확인서 작성부터 시작했다.

금융상품 투자 경험, 투자 지식수준, 보유 자산 대비 투자자산 비중, 기대 수익, 투자 위험 감수 능력 등 간단한 10가지 질문에 답을 했다.

뜻밖에 설문지를 받아간 상담 직원으로부터 "고객님, 초고위험으로 나오시네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투자 경험과 기대 수익률 질문에 "과거 주식 투자 경험이 있다" "시장 초과 수익률을 기대한다"라고 답한 것이 주된 이유가 된 것으로 보였다.

다른 질문 항목에선 "투자 지식수준이 낮다" "단기적 손실을 감내할 수 없다"고 보수적인 답을 했지만 투자 성향 분석의 전체 결과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은 듯했다.

그러자 상담 직원은 여러 펀드로 구성된 '고위험 펀드랩'과 '중위험 펀드랩'을 들고 왔다.

'고위험 펀드랩'은 국내주식형 액티브펀드 24%, 국내채권형펀드 30%, 해외주식형 선진국펀드 21.5%, 머니마켓펀드(MMF) 등 현금성 자산 10.5%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전체적으로 위험 자산군의 비중이 50%대 수준이었다.

'중위험 펀드랩'도 같은 방식으로 구성돼 있지만, 안전 자산인 채권형 펀드와 현금성 자산의 비중이 다소 높은 정도로 차이가 있었다.

일반 투자자들이 전문 용어로 가득 찬 수십 쪽에 달하는 일임 상품 설명서를 현장에서 꼼꼼히 읽고 이해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모델 포트폴리오 설명서에는 각 펀드의 유형만 제시돼 있었을 뿐 유형별로 담는 구체적인 펀드에 대한 설명은 따로 없었다.

어떤 펀드를 편입하게 되느냐고 질문하자 상담 직원은 사무실로 돌아가 5분쯤 지나서 펀드 리스트를 담은 자료를 들고 나왔다.

그렇지만 그 자료에도 각각의 펀드 운용 방침과 과거 수익률 등의 내용은 담겨 있지 않았다.

결국 투자 지식이 높지 않은 고객들로서는 증권사의 펀드 선택 능력을 전적으로 믿고 투자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일부 고객들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수수료 정보에 대한 설명도 아직 구체적이지 못했다.

고위험 펀드랩의 운용 보수는 0.8%로 제시됐지만, 편입 펀드에 대한 운용 보수는 별도로 산정되는데 워낙 여러 펀드를 담다 보니 정확한 숫자는 실제 가입을 마쳐 봐야 알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상담 직원은 "고위험 펀드랩은 전체적으로 연 1.8∼2.0%, 중위험 펀드랩은 연. 1.5%가량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금융당국은 성향별 고객에게 각각 두 개 이상의 모델 포트폴리오를 제시하도록 했지만, 현장에서는 사실상 한 가지 모델 포트폴리오만 제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증권사에서는 고위험 펀드랩은 같은 포트폴리오로 적립식과 자유 불입식 등 두 가지만 제시했다.

제도 시행 초기임을 고려해도 가입 절차를 밟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는 점은 앞으로 직장인 고객 유치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이날 기자가 일임형 ISA 가입 절차를 마치는 데는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 은행 창구 가보니…"수수료 등 설명 미흡"

14일 오전 9시 서울 중구에 있는 한 대형 은행 지점.

ISA에 가입하러 왔다고 말하자 창구 직원은 서류를 한 묶음 주며 "사인하고 적어야 할 것이 많으니, 사인하면서 설명을 들으라"고 말했다.

어떤 서류인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사인하면서 직원 설명을 들었다.

직원은 신탁형 ISA는 가입자가 직접 상품을 골라야 한다며 예금과 펀드 상품을 소개했다.

가입설명서의 상품 난에는 예금과 펀드, 파생상품이 적혀 있었지만 주가연계증권(ELS)이 최근 불완전판매 논란을 겪고 있어서인지 물어보기 전에는 권하지 않았다.

대신 파생상품과 투자 위험 등급이 1등급으로 같은 해외주식형 펀드를 추천했다.

직원은 해외주식에 투자하는 상품인데 수수료는 0.2%로 일반 예금 상품의 수수료(0.1%)와 거의 비슷하지만 수익률은 훨씬 높게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해당 펀드에 별도로 붙는 운용 및 판매 수수료는 설명해 주지 않았다.

펀드 상품은 은행에 내는 운용 수수료 외에도 연 1% 내외의 해당 펀드에 붙는 개별 수수료가 추가로 있지만,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은 것이다.

또 해외주식형펀드는 증권사에서 따로 가입해도 비과세 혜택을 받아 굳이 ISA에 가입해 비과세 한도를 줄일 필요가 없다는 설명은 하지 않았다.

기자가 원금을 까먹을 수 있느냐고 묻자 그제야 "펀드인 만큼 원금 손실 가능성이 조금 있다"고 말했다.

상품 설명서에는 해당 상품의 최근 1년 수익률이 -5.3%라고 쓰여 있었지만 어떤 의미인지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해외주식형펀드에 가입하겠다고 하자 은행에서는 기자의 투자유형을 알아봐야 한다며 설문조사를 시켰다.

투자성향은 위험등급이 낮은 4등급의 '안전추구형'이 나왔다.

그러자 투자성향이 안전추구형이지만 위험등급이 1등급인 공격투자형 상품에 가입하겠다는 확인서를 쓰도록 했다.

고객이 전적으로 자기 책임으로 투자하겠다는 내용의 확약서인 '투자권유불원서'와 '부적합상품거래확인서'다.

이어 수익률이 더 높은 상품은 없느냐는 물음에 ELS를 추천했다.

해당 직원은 "지금 당장 가입하지 않아도 나중에 인터넷에서 바로 가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성향이 안전추구형으로 나오는데 상관없느냐고 묻자 "지금처럼 공인인증서로 투자하겠다는 확인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가입 도중 기자의 계좌에서 전 회사를 퇴직하며 만든 개인형 퇴직연금(IRP) 통장을 발견하자 해지 후 ISA로 갈아타라고 권유했다.

직원은 "IRP는 55세를 넘어야 세금을 줄일 수 있으니 그때까지 기다릴 게 아니면 더 불어나기 전에 해지하고 ISA 통장에 넣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말했다.

해당 은행의 한쪽 벽면에는 절세 효과를 설명하며 IRP에 가입하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지만, 한쪽에서는 해지를 권하는 상반된 상황이 빚어졌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