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줏대감'도 잘라낸 칼날… 친노 "차르 김종인"

더민주, 이해찬 공천 배제 파장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14일 친노(친노무현) 진영의 좌장인 6선 이해찬 전 국무총리를 끝내 공천배제했다. 평민당 공천으로 1988년 13대 국회에 입성한 후 18대를 제외하고 14·15·16·17·19대까지 내리 등원한 더민주의 ‘터줏대감’이 낙천의 칼바람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14일 오전 국회에서 총선 D-30을 맞아 필승 퍼포먼스를 하기 앞서 생각에 잠겨 있다.
이제원 기자
이 전 총리 낙천은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지난 1월 문재인 전 대표의 요청으로 영입된 김 대표가 현역의원 평가 하위 50%에 포함되지 않아 무난히 공천될 것으로 보였던 이 전 총리를 ‘정무적 판단’에 따라 쳐냈다는 것이다.

당 관계자에 따르면 이 전 총리 컷오프는 지난 11일 비대위 회의에서 김 대표의 주도로 큰 가닥이 잡힌 상태였다. 하지만 당내 최다선이자 최대 계파의 좌장을 자르는 것이어서 최대한 명예퇴진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막후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수현 대표 비서실장이 지난 12일 문 전 대표에게 전화로 상황을 1차 전달했다. 문 전 대표는 당시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공천개혁을 하려는 지도부의 고민을 이해한다”면서도 “이 전 총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반대의 뜻을 밝혔다. 김 대표는 이에 13일 밤 직접 문 전 대표에게 전화해 “전체 선거 구도 때문에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양해를 구한 뒤 이날 발표를 강행했다.

더불어민주당 친노(친노무현)계 좌장인 이해찬 의원의 공천 탈락이 발표된 14일 오전 세종시 이 의원 선거사무소 문이 굳게 잠겨 있다. 이 의원은 이날 공식 입장발표 없이 칩거에 들어갔다.
세종=연합뉴스
김 대표 측은 이번 결정이 총선 판도와 친노·운동권 비판 여론 등을 고려한 결과라고 말하지만 당 안팎에선 순수하게만 보지 않는 시각도 있다. 야당 분열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현재 김 대표의 역할은 이 전 총리가 맡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 전 총리는 그동안 각종 선거의 기획을 주도해 왔던 야당 내 대표적인 전략기획통이다. 총선 후 대선 국면까지 바라보면 두 사람은 당내 최대 라이벌이 될 수도 있다. 김 대표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선 13대 총선에서 김 대표가 서울 관악을에서 이 전 총리에게 분패한 악연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친노 진영은 이날 김 대표를 전제군주 ‘차르’에 비유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공천배제된 현역 21명 가운데 이 전 총리를 비롯해 9명은 친노, 4명은 범친노 정세균계로 분류된다.

서울 은평을에 출마한 임종석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페이스북에서 김 대표를 겨냥해 “친노 일부의 부적절한 언행을 침소봉대하고 보수 언론에 편승해 당을 흔들고 쪼개고 있다”고 비난했다. 초선 이학영 의원도 페이스북에 “이건 비극이다. 당원과 지지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이유를 알려줘야 하지 않느냐”고 반발했다. 김현 의원은 페이스북에 “노무현 대통령이 진짜 그립고 보고 싶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 전 총리는 이날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하루종일 칩거했다. 그의 보좌진은 트위터에 “당의 불의한 결정에 대해 조만간 입장을 밝히겠다”고 적었다. 세종시당 당원들을 중심으로 그의 무소속 출마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당의 평가는 싸늘하다. 국민의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특정인을 표적 배제했다고 소위 ‘친노 패권주의’라는 큰 골격은 바뀌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천정배 공동대표도 “더민주가 패권적 기득권 구조를 해체했다고 보긴 힘들다”고 말했다. 박지원 의원은 문 전 대표, 정세균 전 대표가 김 대표의 공천방식에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에 대해 “측근들이 많이 컷오프 당했는데 두 분은 대통령 후보를 하기 위해 참고 있는 거냐”고 비꼬았다.

김동진 기자 bluewin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