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색화가 아니다… 내 작품, 있는 그대로 봐줬으면”

이강소 화백, 프랑스 생테티엔 근현대미술관서 초대전
이강소(73·사진) 화백이 지난 4일부터 프랑스 생테티엔 근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고 있다. 오는 10월 16일까지 열리는 초대전으로, 작가의 지난 20여 년의 주요 작품을 보여주는 자리다. 생테티엔 근현대미술관은 2006년 이우환, 2007년 박서보, 2011년 정상화 전시를 비롯해 2006년 옌페이밍, 2007년 쩡판즈 등 아시아 현대미술을 지속적으로 소개해 왔다.

“모더니즘의 타성에 젖은 서구의 대안적 모델로서 아시아 미술에 주목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인간 즉 ‘나’ 중심으로만 나아갔던 모더니즘에 대한 습성을 한국미술을 통해 다시금 환기시키는 계기로 삼고 싶었을 겁니다.”

사실 동양에선 일찍이 인간과 자연(우주)을 별개가 아니라 하나로 보았다. 모든 존재는 관계성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세포도 우주 공간의 먼지와 관계가 있다고 현대과학에서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인간도 주변의 대상과 입자 수준의 관계성을 가지고 생명적 소통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전지구적 관점에서 생태와 환경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는 이유죠.” 

생테티엔 근현대미술관에서 프랑스 관람객들이 이강소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생테티엔 근현대미술관은 최근 들어 아시아 현대미술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1970년대 한국미술의 특수성을 거론했다. 탈모더니즘의 기저가 자연스럽게 전통과 조우했다는 분석이다.

“당시 한국 작가들은 현대미술의 방법론을 다양하게 모색한 시기였습니다. 다양한 미술운동 단체의 출연이 이를 말해주고 있지요.”

그는 요즘 난리법석인 단색화에 대해 의미 없는 규정이라고 했다. 자신이 단색화 작가로 거론되고, 그런 분류로 전시까지 열리는 상황에 대해서 못마땅한 심정을 드러냈다.

“지금의 분류 방식이라면 수묵화도 단색화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외형적 요소로 바라보면 서구의 모노크롬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정신성도 동양미술의 전유뮬로 여겨서는 곤란합니다.”

그는 탈모더니즘 관점에서 현대미술을 모색한 1970년대의 다양한 흐름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단색화의 범주로는 논리성이 미약합니다. 당시 한국미술의 다양한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려는 작업이 우선돼야 합니다. 많은 작가들이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는 한국미술의 풍부한 자원들을 매장시켜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단색화 규정이 또 하나의 배타적 기득권이 되는 모습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단색화 바람이 벌써부터 식상하다는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미술 장사꾼들의 한바탕의 놀이로 끝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국 미술의 진솔한 당대 흐름이 세계미술계에선 특별한 것이고, 그것이 경쟁력의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화백에게 모든 이미지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존재는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 미술은 내가 없는 것이다. 관계성을 환시시키는 것으로 족하다.”

생테티엔 근현대미술관 관장이자 이번 전시의 큐레이터인 로랑 헤지 관장은 “그동안 한국 작가들의 추상 회화를 통해 동양 특유의 자기 억제를 통한 절제적 엄숙함과 차분하고 섬세한 단색조의 우아함에 매료되었던 유럽 관람객들에게 이강소의 회화 작품은 한국의 추상회화를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