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여제’ 박인비, 왜 이러지

9개월 만에 컷 탈락 수모… ‘부진의 늪’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여자 골프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박인비(28·KB금융그룹).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메이저 대회 7승을 포함해 무려 17승을 기록 중인 박인비가 예전의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올시즌 4개 대회에 출전해 공동 30위가 최고 성적이다. 지난 시즌 최저타수상을 받으며 ‘명예의 전당’ 입회 조건을 갖춘 세계랭킹 2위인 박인비로서는 시즌 초반이기는 하지만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성적표다.

박인비는 LPGA투어 2016시즌 첫 대회인 퓨어실크 바하마 클래식 1라운드에서 아마추어 스코어인 80타를 친 뒤 허리부상을 이유로 기권했다. 박인비는 2개 투어를 건너뛰며 허리 부상 치료에 전념했다. 이 기간에 자신을 그토록 아껴주던 시아버지(67)가 돌아가셨다. 주변에서는 박인비의 경기력에 행여 지장을 줄까봐 시아버지의 지병 사실을 숨겼다고 한다. 시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박인비와 스윙 코치인 남편 남기협(37)씨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박인비는 3주 만에 복귀했지만 혼다 LPGA 타일랜드와 연이은 HSBC 위민스 챔피언십에서도 공동 30위를 기록할 정도로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다. 

박인비가 19일 LPGA 투어 JTBC 파운더스컵 2라운에서 드라이버 샷을 날리고 있다.
애리조나=펜타 프레스
미국으로 돌아온 박인비는 19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와일드파이어 골프클럽(파72·6538야드)에서 열린 LPGA 투어 JTBC 파운더스컵에 출전했다. 2라운드에서 3타를 줄였지만 1라운드에서의 부진(73타)을 만회하지 못하고 컷 탈락의 수모를 맛봤다. 지난해 6월 아칸소 챔피언십 때 컷오프된 이후 거의 9개월 만이다.

박인비가 시즌 네 번째 대회 만에 컷 탈락의 불명예 기록을 남기자 우려가 적지 않다. 더구나 박인비는 태극 낭자 가운데 세계랭킹이 가장 높아 8월에 열리는 리우올림픽 출전이 거의 확정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박인비는 스스로도 극단적인 ‘슬로 스타터’라고 밝힐 정도로 시즌이 흐를수록 성적이 좋아지는 타입이다. 박인비는 지난해 3월 LPGA 투어 HSBC 위민스 챔피언스에서 첫 승을 따냈고 2014년에도 3월에 열린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월드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시즌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 때문에 이번 파운더스컵 대회에서 박인비는 내심 부활을 잔뜩 노렸지만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박인비는 1라운드 때보다 다소 샷과 퍼트감이 향상됐지만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그린 적중률은 66.7%에서 72.2%로, 퍼트 수는 31개에서 28개로 좋아졌다. 2라운드에서 250야드 남짓한 드라이버 샷은 한 차례만 페어웨이를 벗어날 정도로 정확했지만 이에 비해 타수를 많이 줄이지는 못했다. 무엇보다도 집중력이 부족해진 탓에 예전의 정교한 아이언 샷에 이은 컴퓨터 퍼팅을 찾아볼 수 없는 게 문제다.

박인비는 올시즌 기권한 바하마 클래식을 제외한 10번의 18홀 라운딩에서 평균 71.400타를 기록, 지난해 시즌 평균 타수(69.415타)보다 약 2타를 더 쳤다. 지난해보다 대회당 무려 8타가 더 많은 스코어를 내는 만큼 상위권 입상을 결코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박인비 매니지먼트사인 IB월드 관계자는 “박인비의 부진은 부상의 후유증과 시아버지의 죽음에 따른 상실감 등 멘털의 문제라고 볼 수밖에 없다. 동계훈련 때 스윙을 바꾼 것도 없다.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박병헌 선임기자 bonanza7@segye.com